한강 작가의 《흰》(2016) 읽고, 나눈 뒤
책을 펼치고, 대화하러 나서는 그 순간까지 어떤 이야기를 할까 고민했습니다.
(이런 점이 독서모임의 장점이자 장벽인 듯합니다)
문득 흰이 더 이상 색이 아니라고 느껴져서 그 이야기를 하면 괜찮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서 나와 독서 모임을 하러 갈 때까지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그 길에서 만난 횡단보도에 놓인 더워 보이는 흰 선과 대조적으로 지하주차장에 펼쳐진 차가운 흰 표식이 눈에 듭니다. 평소에 무시하던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눈부신 햇빛을 쉬이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책 속에서 만난 '떡', '젖', '우유', '연기', '강보' 등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내 안의 여러 기억을 깨워줬기 때문입니다.
한강 작가는 휴식을 위해 떠난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추운 겨울의 도시라고 설명한) '흰' 목록을 펼쳐 과거를 들여다봅니다. 심장을 문지르며 꺼낸 문장으로 책을 씁니다. 작가의 말에서 1부와 2부를 짓고, 마지막 3부는 귀국해서 완성시킨 뒤에 출간했다고 합니다. 과거에서 만난 언니의 죽음, 어머니의 죽음, 그 죽음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통해 조용히 '흰'이라는 색상을 중심으로 시간의 흐름을 풀어놓습니다.
이렇게 풀어낸 슬픔은 무겁지만, 문장이 그 슬픔을 더 투명하도록 만듭니다.
<달력>에서 누군가 슬픔과 가까워지는 어떤 경험을 했느냐고 물었을 때, 작가는 키우던 개의 죽음을 꺼냅니다. <달떡>과 <젖>에서 등장한 상실의 슬픔을 털어놓지 않습니다. 그런 답변마저 담담하게 가슴을 찌릅니다. 계속 등장하는 흰 색상이 여러 경계를 무너뜨립니다.
생명과 죽음, 상실과 회복을 오가며 이어지는 길과도 같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 흰이 조용히 나를 따라옵니다. 아침 안개, 종이의 여백, 찻잔에 맺힌 투명한 물방울. 일상 속의 흰이 나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흰》을 읽고 나누며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나를 연결해 봅니다. 다시 펼친다면 어떤 흰이 나를 기다릴지 궁금하게 만들어 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