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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문구점 앞에 붙여진 아이의 사진

by 박병수

학교에 다녀온 아이가 학교 앞 무인문구점 앞에 붙여진 아이의 사진에 대해 알려줍니다.

아이가 학교에 가는 길에는 2개의 무인점포가 생겼습니다.

각각 아이스크림과 문구를 전문적으로 다루지만, 내부에는 어린이들이 관심이 갈만한 장난감들이 많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경제뉴스를 읽으며, 도둑질한 아이의 사진을 가게 앞에 게시한 무인점포 점주가 벌금형을 받았다는 기사도 떠오릅니다. 사실 헤드라인만 읽고 지나쳤는데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기사의 뒷 내용이 더 궁금해졌습니다.


뉴스에 등장한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아이가 무인점포에서 약 2만 원 상당의 포켓몬 카드를 훔쳤고, 그 사실을 CCTV를 통해 확인한 가게 주인이 아이의 얼굴을 크게 확대해서 출입문 앞에 게시했습니다. 동네에 소문이 퍼졌고, 아이의 부모님이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사실 적시 명예훼손'이라는 죄목으로 해당 가게 주인을 고소했습니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법률적 근거를 묻는 내용이 기사에 조금 더 실려있었습니다. 고소당한 가게 주인에게는 30만 원에 해당하는 벌금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아이가 이야기해 준 무인문구점 앞에 붙여진 아이의 사진을 떠올려보며, 기사의 내용을 곱씹었습니다. 도둑질로 피해를 본 점포 주인의 대응은 법률적으로 정당하지 않았습니다. CCTV 화면을 보면서 화가 많이 났겠지만, 피의자를 특정할 수 있도록 얼굴 사진을 확대해서 가게 앞에 사진을 게시하는 대응을 한 것은 '사적 복수'에 해당합니다. 경찰서를 방문해서 적당한 조치를 취하거나, 도둑질한 아이의 부모님께 직접 연락을 했다면 고소를 당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도둑질을 한 아이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하다가, 학교 앞에 있는 수많은 무인점포의 적절성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무인점포 설립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논리를 살펴보면 무인점포 주인의 사적 이익을 위해 공공의 치안 행정력을 이용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인건비 절감을 목적으로 어린이들의 자제력에 대해 시험을 강요합니다. 만약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방범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도덕관념이 정립되지 않은 학생들을 유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인점포 주인이 안 좋은 의도로 CCTV를 설치한 뒤에 도둑질을 한 아이들을 협박해서 발생할 2차 범죄에 대해서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훔치기를 기다렸다가 학부모들에게 높은 합의금을 요구할 수 있는 셈이지요.


사람을 대면하지 않아도 되는 무인문구점의 편의성에 환영하지만, 무인문구점을 자주 이용할 아이의 학부모로서 무인점포 시스템이 제대로 정착되기를 기대하기보다 자녀에게 도덕과 경제에 대해 필수적인 교육을 해주려고 합니다. 아이가 먼저 꺼내어준 일상의 작은 소재를 가치관에 대한 교육으로 연결합니다. 다른 사람의 물건을 임의로 가져가는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도덕적 관념과 물건을 가지고 갔을 경우 입게 될 자신의 경제적 피해에 대해 자세히 교육합니다.


자체 치안력을 높여야 무인점포를 설립할 수 있도록 만드는 법안이 마련되는데 걸리는 소요 시간은 예상보다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그러한 시스템을 만드는 동안 무인점포에 노출된 자녀에게 건강한 돈 교육을 합니다.


무인문구점에서 절도를 한 아이.png 아이가 그린 CCTV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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