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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누가 선생이고, 누가 학생이지?

by 박병수

딸과 수학공부를 할 때 정해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이번 글에서는 2개의 원칙이 등장할 예정이다.

첫 번째는 시간을 정해두고 시작하는 것이다. 15분 모래시계를 두 번 돌려서 총 30분만 수학 공부를 하는데, 딸이 집중해서 수학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정신건강이 더 중요하다는 이유가 붙는다.

30분 정도 열탕에 들어가서 몸과 마음을 담금질한다는 수양의 시간을 보낸다. 수학공부를 위해 할애하는 시간이 30분이 아니라, 1시간 또는 2시간의 목표를 세웠다면 아마 시작할 때마다 괴로울 것이다. 지금은 딱 그 정도가 적당하다.

두 번째는 답을 찾아주지 않고, 답으로 향하는 사고과정을 함께 걷는 것이다. 모래시계가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장면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답으로 향하는 최단거리 계산식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다시 열탕을 떠올리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사우나가 잘 떠오르지 않을 때는 농부의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아무리 급해도 벼가 고개를 숙였을 때 수확하는 농부의 마음을 가지고 인내심 있게 지난한 시간을 보낸다.


풀이로 가는 과정을 잘 돌려서 나름대로 설명하고 있을 때, 문제집에 낙서를 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던가 눈을 한 곳으로 모으는 사시 뜨기 연습하는 딸을 지켜볼 때 울화통이 터지기도 한다. 수련은 참 고되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아이가 문제집에 집중하기 시작하고 번뜩이는 시선으로 문제를 골똘히 살핀다. 자신이 길을 찾았음을 알아차리고 경쾌한 속도로 풀이 과정을 적고 있는 그 순간. 바로 그 순간이 내게는 큰 배움의 시간이다.


누가 선생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학생이 될 때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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