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워니의 식탁 Dec 03. 2023

우리의 거리는 223KM

요즘은 결혼을 '선택'하는 세대라던데, 20대의 나는 선택하고 싶은 나의 '결혼'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를 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대학에 입학하는 것보다,

또 어쩌면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보다 중요할 수 있는 선택일 수 있겠구나.' 그런 고민을 할 수 있도록 나에겐 참 많은 경험들이 일찍이 주어졌던 것 같았다.


그렇게 10여 년이 흐르고, '이 사람'과 앞으로의 시간을 더 잘 맞춰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함께'하는 미래를 자주 대화하고 있었고, 각자가 걸어왔던 '과거'의 경험을 나누며 '현재'를 보내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던 언젠가는 그런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내가 결혼하게 된다면 이 사람과 할 수 있겠구나'




영화, '어바웃타임' 중

함께 약 6개월의 결혼 준비를 진행하던 어느 날, 청첩장 모임이 있다며 잠깐 외출하고 오겠다던 예비신랑이 외출해서는 전화도 하는 둥 마는 둥, 마음이 콩밭에 가있는 거 같더니 '저녁은 아직 먹지 않았고 집에 오고 있다'는 마지막 통화를 끝으로 집에 도착할 시간이 됐는데도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자 슬슬 걱정되어 급하게 저녁식사를 차리기 위해 주방에서 고구마를 손질 중이었다.


'삑-'(멈칫)


'내가 잘못 들었나?'(멈칫)


현관에서 도어록을 누르는 소리가 분명 들린 듯싶었는데 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이어지지가 않았다. 고구마를 손질하던 자세 그대로 굳어진 나는 현관문만 한참을 응시하며 멈춰있던 순간,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며 당황한 표정의 예비신랑이 들어와 멋쩍게 웃으며 대뜸 한쪽 무릎을 꿇고 고백을 했더랬다.


'나랑 결혼해 줄래?'


'당연하지!'


그렇게 작은 내 자취방 주방에서 고구마를 손질하던 중 나는 예비신랑의 공식적인 프러포즈를 받게 되었다.


장거리 연애 중인 우리인데, 이번 주말에 나를 보러 오며 예비신랑은 프러포즈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청첩장 모임을 마무리하고 근처 쇼핑몰에서 팔찌를 구매하고 늦은 밤 중에 꽃다발을 사기 위해 홍대에서부터 가로수길 등을 돌며 찾아 헤맸다는 후일담을 말해주었다. 자정이 다되어가던 늦은 시간 유일하게 열려있던 가로수길 무인 꽃자판기에 하나 남아있던 꽃다발 한 개가 그렇게 반가웠다며, 또 내가 잠들어 있을 줄 알았는데 현관문을 열려하니 주방에서 소리가 나는 거 같아 멈칫했다며 그렇게 문을 열자마자 보이던 내 모습을 보며 대뜸 프러포즈가 시작된 후일담을 말해주었다.


우리 만남의 시작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영화로 '어바웃타임'을 이야기하곤 했었는데, 영화에 나오는 프러포즈 장면처럼 담백한 고백을 하고 싶었던 예비신랑의 그림과 달리 그렇게 나는 주방에서 저녁식사를 차리던 중 평생을 함께하자는 남자친구의 고백을 듣게 되었다.


한껏 안아본 남자친구의 머릿결에서 찬 바깥공기 내음이 맡아지기도 했던 것 같다. 언제나 노력해 주는 남자친구에게 참 많은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많은 것들이 시작하는 우리에게 보다 주어지지 않을 수 있을지 몰라도,


오늘날 주어진 감사할 수 있는 많은 것들에 감사하며 그렇게 시작하고 함께 만들어가자 오빠,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매거진의 이전글 선물 같은 밥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