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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린 Apr 06. 2021

정치가, 평론가, 독자

진중권과 유시민

정치가에 있어 현실과의 타협은 필연적이다.

정치하는 과정에 있어 그의 신념은 일시적으로

후퇴할 수 있으며, 반대되는 정치권력과

몸을 섞을 필요도 있다.

현실 정치는 똥으로 범벅되어 있다.


평론가는 그런 정치가의 손에 묻은 똥을

비판할 권력이 있다.

그 권력은 평론가가 정치와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주어진다.

평론가에게 정계로 진출하시면 어떻겠냐고

묻는다면 그는

"저는 그 더러운 정치판에 몸 담고 싶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할지 모른다.


독자는 그런 평론가를 비판할 자유가 있다.

정치라고는 해본 적도 없으면서

과 글만 가지고 잘난 척하는 꼴이 싫을 수 있다.

'그럼 니가 해봐. 얼마나 잘하는지 두고 보자.'

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요리 한번 해본 적 없는 음식 평론가가

30년 경력 요리사의 음식을 쓰레기라 혹평할 수 있듯이

평론가의 태도를 문제 삼지 않을 수도 있다.


유시민 작가는 정치 평론가지만

정치에 오래 몸 담았고 그의 정치 인생

'결과적으로 실패'했다고 자인했다.

그래서 그는 겸손과 이해의 자세로 정치를 평한다.

 은 그가 평론가로서 정치와의 거리를 적절히

두지 못하는 약점이 되기도 한다.

시원하게 까주기를 바라는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한계는 거기서 나타난다.

 아마도 현 정부와 여당 동료에 대한

일부 실망감을 숨기고 있을 것 같다.

(유시민 작가의 토론 능력은 탁월하고 독보적이다.

왜냐하면 그의 말은 청자의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이성적 사고를 북돋아준다. 민주주의 토론에서

이것보다 중요한 덕목이 있을까?

보수 논객 중에 이런 분 한 분만 계셔도

TV 토론을 짜증 없이 볼 수 있을 텐데...)


반면 진중권 전 교수의 경우

정치를 해본 적도 없고 정치를 해야 할 이유도 없으므로

정치 세력과 먼 거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 그는 비평에는 겸손과 이해가 드물다.

대중들의 욕구, 특히나 현실 정치를 혐오하는

대중의 감정을 대변하여 더 인기를 얻고

더 유명해져 전업 평론가로 톱클래스를

유지하는 목적이 클 것이다.

(토론에서 그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당황했을 때

말을 하기 위해 만들어 내는 말들을 들어 보면

유시민 작가와 대조적으로 그의 소영웅주의적

모와 지성과 사고의 빈약함보인다)

그는 집권 세력을 까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자신의 색깔을 바꿀 의향이 있어 보인다.

(본인은 늘 한결같다 주장하지만)

그러나 그런 태도로 인해 냉철한 비판이 나올 때 많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그만한 지위를

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유시민 작가처럼 조금이라도 나은

정치 세력을 믿고 지지해 주자는 긍정의 생산과

진중권 전 교수처럼 사정을 무시한 가차 없음으로

보다 결함 없는 정치를 요구하는 부정의 생산

두 가지 모두 필요한 것이다.


다만 그들의 뛰어난 재능과 명석함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완벽해 보이는

논리 구조와 언변으로 가짜 뉴스 같지 않은

세련된 가짜로 탄생시키기도 한다.


반면 너무 신중해서 자기 검열이 강하면

자칫 밍밍하거나 긴급 사안에 한 발 늦어

호감도와 영향력이 점차 낮아질 수 있으므로

어느 정도의 오류는 평론가가 감내해야 하며

독자들도 적정한 선에서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두 분 평론가 모두

우리 사회에 소중한 존재이다.

더 많은 비평들은 더 높은 이해를 돕는다.

더 높은 이해는 대중들로 하여금 보다

혼란스럽지 않은 정치적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평론가뿐 아니라 많은 시민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글을 통해 비평하고 서로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투표하는 것 이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조금씩 바꾸는 것이다.


(문맥의 흐름에 방해가 되는 문장은 괄호 안에 기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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