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정당에 투표하고 '현타'왔다는 사람들
타인, 사랑, 자유로 해석해 본 '진보'
사람들과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를
논할 때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저 개념화된 단어들에 대한 서로 간의 관념 차이다.
단순한 사전적 의미로 생각하는 사람,
정당의 역사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람,
현재 우리나라 정당들을 떠올리는 사람 등 제 각각이다.
본 글에서는 이런 혼란스러움을 피하기 위해
'진보'를 '타인에 대한 사랑'과
동일한 의미로 두고 사용해 보겠다.
(강신주 박사의 의견을 차용해 봄)
보수 정당에도 타인에 대한 사랑이 있는 사람이 있고
진보 정당에도 타인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진보 정당에 몸 담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진보'를 지향한다고 볼 수는 없다.
나는 아래 3가지 사항을 전제로 시작해 보려 한다.
정치에서 '타인에 대한 사랑'이란
모든 국민이 기본적인 '자유'를 누리도록
법으로 보장하는 행위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기본적 자유는
'돈'과 '시간'의 잉여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진보'의 가치는 모든 국민이
여분의 돈과 시간을 가지도록 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국가에서
국민을 4가지 계층으로 분류할 수 있다.
(계층 / 돈의 여유 / 시간의 여유)
1. 부자 / 매우 많음 / 많음
2. 고소득자 / 많음 / 적음
3. 저소득자 / 적음 / 적음
4. 취약자 / 없음 / 많음
당신이 위에서 말한 '진보'를 지향한다면
저소득자와 취약자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며
당신의 것을 조금 내어주더라도 그들이 살만한
세상을 살게 해주고 싶을 것이다.
일차원적으로 생각해보면 문제 해결 방법은 뻔한다.
노동은 개인의 시간을 돈으로 교환하는 행위다.
지금보다 (1) 노동 시간을 더 줄이고
(2) 수입을 더 증가시키고
(3) 지출을 더 감소시키면 된다.
A 씨는 그렇게 되면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이
곧 오겠지 생각하며 진보 정당들 중에서 가장
집권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당에 투표했다.
투표한 정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날
친구와 술과 함께 기쁨에 취했다.
몇 년이 지나는 동안 A 씨의 눈에 들어온 것들은
기대를 실망으로 변하게 했다.
최저 시급은 인상되었는데 점원이 있던
자리에 셀프 계산대(키오스크)가 들어섰다.
근로시간을 최대 주 52시간으로 제한하자
사측이 급여를 삭감하였다.
대기업 비정규직에 있던 사람들은
이름만 있는 작은 회사의 정규직으로 소속만 바뀌었다.
부동산 가격을 잡으려고 대출을 규제하고
양도소득세를 강화하더니 집값이 2배 올랐다.
저소득층을 위해 건설한 임대 아파트의
주차장에는 외제차가 즐비하다.
전월세 상한제가 시행되자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인상하겠다고 한다.
몇 년간 계층 간의 격차는 줄어든 것 같지 않다.
여전히 강경한 지지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은 정책의 잘못이 아니라
시장에 돈이 넘쳐나서, 디지털 기술이 발전해서,
코로나 때문에 언택트 환경이 도래해서,
기득권과 보수 언론이 공작을 펼쳐서 라고 한다.
정책은 자본주의의 이해 속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정책이 현실로 실행되었을 때
'기업과 자본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결정하여야 한다.
정말 몰라서 그랬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어차피 오래된 당론이고 약속한 공약이니
정치적 '실적'을 위해 빨리 밀어 부쳐야 했고
과거 야당 시절의 설움에서 잠재된 피해 의식은
짜릿한 과반 의석의 권위 위에서
황홀한 동력이 되어 줬을 것이다.
그들은 집단적 자아도취 속에서
'모르는 척'을 했다고 본다.
그들에게는 '타인에 대한 사랑'보다
종교화 된 이념과 권력에 대한 실현 욕구가
더 앞서 있었던 것 같다.
정치가도 일종의 직업이고
조직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더군다나 대단한 야망가들이다.
기업으로 치면 임원들과 비슷하다.
회사에서 가끔씩 눈에 띄는 임원들이 있다.
그들의 좋은 사상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실무에 능통하고 '탁월한 행정'을 발휘한다.
그들은 의사 결정의 밀도는 매우 높아서
풍선 효과 같은 부작용 발생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괴롭도록 노력한다.
이런 분들은 임원이 되기 전부터 직장 생활 내내
회사와 직원에 대한 '사랑'이 있는 사람들이다.
서두에서 말한 진보와 같은 맥락이다.
여전히 기득권 프레임에 갇혀서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부류.
믿었는데 이제 '현타'가 왔다면서
이번에는 보수당에 투표하겠다는 부류.
지난 대선에서는 같은 후보에 투표했던
두 부류의 간격은 요즘 크게 벌어져
술자리에서도 정치 이야기를 회피하는 분위기다.
이 와중에 이득을 보고 있는 부류는 아마도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