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많이 보지 않는 내가 최근 즐겨보았던 작품이 하나 있다. 바로 99학번 의대 동기들의 병원 이야기를 그린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다. 이 드라마는 수많은 의학 드라마 중에서도 유독 레지던트의 현실 생활을 잘 녹여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퇴근 후 저녁식사를 하다가도 응급 호출을 받고 다시 병원으로 향하고, 당직을 서면서 병원 한 구석에서 쪽잠을 자고, 커피를 입에 물고 다니며 피곤함을 견디고, 교수님들에게 잔뜩 혼이 나는 그들의 일상. 한참 드라마에 몰입하다 보면, 모든 이들이 선망하는 의사라는 직업도 결코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럼에도 있어 드라마 속의 내 또래인 본과 3학년 실습생들을 보면 내심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들에게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뚜렷한 직업이 정해진 것이니까. 한 길로만 쭉 걷다보면 그래도 정확한 목적지가 있는 셈이니까.
문과 계열인 내 전공은 꽤 직업 선택이 폭이 넓다. 아무것도 모르던 신입생 시절에는 선택지가 많으니 그게 마냥 좋은 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진로를 명확히 정해야 하는 지금 시점에서는 단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당장의 내 선택에 인생이 좌지우지될 것만 같아서, 혹시나 나중에 후회를 하지는 않을까 싶어서이다. 다들 첫 직장이 중요하다는데, 나는 과연 어느 방향으로 첫 발을 디뎌야 할까. 과연 어떤 분야에서 내가 빛을 발할 수 있을까.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적성이 맞는 분야도 다양한 나에게 있어서 요즘 그 고민은 나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가끔은 이 선택의 기로에서 그저 회피하고 싶은 마음도 들곤 한다.
나와 같이 취준생이 된 친구들과 만남에서는 어김없이 미래에 대한 불안함, 걱정 가득한 대화가 오간다. 경영학을 전공하는 친구도, 회계를 전공하는 친구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아래 글은 요즘 친구들과 모이기만 하면 자연스레 나오는 대화 레퍼토리(repertory)이다.
“우리 이제 뭐 해 먹고 살지? 그래도 3년 뒤에는 우리 다 직장 다니고 있겠지?”
“등록금을 내고 다니는 학교도 그렇게 힘든데, 월급 받는 직장에서는 얼마나 힘들까?”
“나는 뭘 해야 좋을지, 자신도 없고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어.”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어느새 다들 땅이 꺼질 듯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다. 어른들은 우리에게 지금 너희 나이 때가 좋을 때라고, 20대 청춘이 부럽다고들 하신다. 하지만, 정작 20대인 지금의 우리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여 산다. 입사 n년차가 되어서 안정적인 삶을 시작한 30대 어른들이 대단하고 멋져 보인다. 그러나 그들도 한때는 우리와 같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또 지금도, 고민의 무게는 같을지라도 종류는 다른 고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고민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돈이 많은 부자도, 대중들의 사랑을 가득 받는 연예인들도 저마다의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취업의 문턱에 있는 우리도 불과 몇 년 전에는 대학 진학의 문턱 앞에 서 있었다. 그때에 비하면 고민의 종류는 달라졌지만, 그 무게는 지금보다 결코 가볍지는 않았다. 또, 입사 n년차가 되어서 친구에게 상사의 뒷담을 시작할 그 시점에는 또 정체 모를 어떤 고민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고민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에게 ,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최선의 방법은 그저 주어진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그저 최선을 다해 열심히 부딪혀 보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