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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lly Pok 밀리폭 Mar 13. 2020

영국에서 마음의 병을 앓았을 때 나를 살게 한 것

예술로부터의 위안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왜 호스피스에서 환자 간병을 하고 싶어 목을 매는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대단한 일이 아니어서일까? 꿈이라기엔 너무 작아서? 간호사, 의사가 아니었기 때문일까?

‘병원은 계속 이력서에서 광탈하는 걸 보면 인연이 아닌 것 같은데 일단 카페에서 일해보지? 레스토랑에서 일이란 걸 시작이라도 해보지? 요양보호사가 아니면 일 안 할 거라고? 대단하긴 한데 되게 힘든 일이라고 들었는데... 너 한국에서 사무일만 했었잖아. 자신 있어? 왜 그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는 거야?’ 그런 눈빛이었다.   아무리 열정적으로 설명해도 모를 일이었다. 하고 싶어 하는 것까지는 이해받았는데, 안 되는 대도 계속 도전하고 이렇게 간절한 것에 대해서는 이해받지 못했다. ‘그렇게 간절할 만큼 대단한 일이 아닌데...’ 쯤으로 취급받는 기분이었다.

나는, 한국에 돌아가면 호스피스 병동에서 사회복지사를 하는 게 꿈이었다. 영국에서의 경험이 훗날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그저 새로운 경험이라면 물불 안 가리고 도전하던 20대 호기심쟁이 때는 지났다. 식당이나 세일즈 일은 이미 미국과 호주에서 해봤기 때문에 얻을 게 없었다. 미래에 희망을 꿈꾸지 못할 일을 선택해야 하는 건 곤욕이었다. 내 나이 서른둘. 이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그래서 버텼다. 난 영국의 선진 호스피스 시스템을 어깨너머로라도 볼 수 있는 곳에서 일하기를 간절히 바랬던 것이다.


 백수였던 나의 일상은 Better GYM Pancras에 가서 fitness classes에 참여해 운동하고 바로 위층의 도서관에서 영어공부와 독서를 하는 것이었다. 가끔 집에 같이 사는 개의 산책을 시켰고 이력서를 꾸준히 고쳐갔다. 알랭 드 보통의 광팬이어서 인생학교(The School of Life)의 인생을 위한 수업을 수강하기도 했다. 같이 사는 한국인(flat mates)들과 외식도 했다. 그들은 같이 와인을 즐기며 진솔한 대화를 하는 벗이어서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었다. 나의 유일한 문제는 직업이 없는 백수라는, 정체성에서 오는 좌절감이었다.

 나의 지친 영혼을 위로받은 곳은 박물관과 미술관이었다. 영국에서는 ‘예술의 민주주의’라는 정책적 신념으로 인해 대부분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무료이다. 내가 자주 갔던 곳은 대영 박물관(British Museum)과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영국 도서관(British library)이었다.

BRITISH LIBRARY CARD

영국 도서관은 집에서 걸어서 이십오 분, 대영박물관은 사십 분, 내셔널 갤러리는 한 시간 거리였다. 유물들, 작품들로부터 역사의 숭고함을 느끼고 나면 내 고민과 번뇌는 지구 상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대영박물관의 잘생긴 람세스 2세 흉상도 좋아했고, 내셔널 갤러리의 램브란트 자화상을 특히 좋아했다.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으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가깝다 보니 영국 도서관을 자주 다녔는데 가장 좋아하는 곳은 도서관 내에 있는 박물관이었다. 비틀즈에 빠지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나는 음악적 감성이 풍부하지도 않거니와 평소 즐기지도 않아서 음악에 무딘 편인데, 어두운 공간에서 헤드셋을 쓰고 비틀즈의 음악을 듣다 보면 마음이 설레었다.

 영국에서 살면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내 인생에서 처음 예술이 일상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대답하겠다.

 한국에 부탁해서 받은 책들도 도움이 되었다. 알랭 드 보통의 ‘철학의 위안’을 읽으며 인기 없고 가난하고 좌절한 나의 영혼을 위로했다.

이제와 ‘영국에서 나에게 주어진 무한정 사색하는 시간이 정말 득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생각할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쁘게 일하는 환경이었으면 마음이 병들 새도 없었을 텐데...

 아직도 모르겠다. 내가 겪은 영국에서의 숨 막히는 좌절, 그리고 극복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인지...

 영어 울렁증, 대인기피증, 우울증, 열등감, 자격지심, 슬픔, 분노... 내 안에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파도처럼 일어나 허우적 댔던 그 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가끔 내 선택을 후회하고 가끔은 나의 영혼을 위해서 필연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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