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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lly Pok 밀리폭 Feb 09. 2023

렘브란트: 그의 삶이 담긴 노년의 자화상을 애정한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

내셔널 갤러리에서 렘브란트의 마지막 초상화가 가장 인상 깊었다. 같이 투어를 했던 한 여사님도 렘브란트의 초상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셨다. 울컥하신 목소리로 중년의 고생한 남편이 생각나서 안쓰럽기도 하고 굴곡진 삶보다 역시 평범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에 대해 말씀하셨다.
같은 작품을 인상깊다고 꼽았지만 신기하게도 나랑 생각이 달랐다. 나는 렘브란트의 마지막 노년의 초상화를 보며, 굴곡진 삶이 묻어나는 그의 얼굴이 얼마나 멋진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 눈엔 인생의 깊이가 느껴지는 아름답고 멋진 표정이었다. 배부르고 등 따시게 한평생 살다가는게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한 번뿐인 인생, 모두가 한 번은 죽는 삶인데 남다르게 느끼고 겪고 난둬 나온 세월이 배인 표정이 참 좋았다. 내 삶도 그렇게 인생을 담아내는 얼굴을 만들어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노년에 어린아이 같이 멋모르는 표정을 한 노인이라면, 잃어버린 세월을 뒤로하고 어린아이로 돌아간 치매노인이지 않을까? 긴긴 세월 아픔 하나 없이 굴곡이 전혀 없는 인생이 좋은 인생인가? 복잡한 심경의 렘브란트의 표정이 잊히지가 않는다. 안타까워서가 아니라 대단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 복잡한 상황이 지난 다음 초상화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 당시엔 60대 초가 노년이었지만 요즘 60이면 꽃중년이다. 21세기에 렘브란트가 살았더라면 필히 90살이 되어 60대의 고단함을 초월한 초상화를 남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또한 지나가리라.’ 부처님같이 인자한 얼굴은 굴곡 없는 인생에서 온 것이 아니라 굴곡진 인생을 살아내고 해탈한 데서 온 것이니까.
니체도 불운과 외부의 저항, 어떤 종류의 혐오, 질투, 완고함, 불신, 잔혹, 탐욕, 폭력.. 이런 것들을 경험하지 않고는 어떤 위대한 미덕의 성장도 좀처럼 이룰 수 없다고 했다. 이런 것들은 인간 존재가 완성된 삶을 사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들 중 일부라는 것이다. 한때 극도의 비참함을 느껴보지 않고는 그런 것들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위대한 작품이 꼭 불행에서 왔다는 게 아니라.. 그 누구도 경험 없이는 위대한 예술품을 창작할 수 없다는 니체의 말에 공감하며, 렘브란트가 완성된 삶을 살았다고 감히 평하고 싶다.
한 점의 그림을 통해 프랑스와 영국 간에 아슬아슬 전쟁의 위기에서 화해 모드로 접어들기도 하고, 숨겨진 알레고리를 지니고 있는 그림을 통해 철학을 발견할 수도 있다.

 또 모든 초상화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찾아보았는데, 카사노바가 사랑했던 여자인 발렌티를 선정해본 것 까지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예술과 가까워지며 일상이 한층 풍요로워진 느낌이다. 이런 기회가 주어지는 런던에 푹 빠졌고, 영국이 너무나 좋다.
 예술의 민주화 정책의 일환으로 영국 대부분의 갤러리, 박물관의 입장료가 무료라는 것은 나의 행복의 원천이 되었다. 입장료가 있었다면.. 당연히 한 번밖에 못 왔을 것이고, 그 한 번에 되도록 많이 보는데만 모든 열성을 다했을 것이다.
 문득 든 생각은 예술 공부는 과학실험 같아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가까이하다 보면 '어느 순간 유레카'를 외치게 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보고 보고 또 보다보면 갑자기 마구 아이디어들이 샘솟는다.
 박물관 유물도 갤러리 그림도 시간이 걸린다. 한 번에 다 알 수 없다. 수학시험처럼 뭔가 막히는 것이 있을 때 질질 시간 끌지 말고 다른 문제 다 풀고 다시 돌아왔을 때 풀리는 것 같다. 신기하다. 한 작품을 감상하다가 리프레쉬하고 돌아오거나 다른 날 와서 보면 볼 때마다 다르게 느껴진다. 답답했던 수학 문제가 봐도 봐도 모를 것 같던 게 갑자기 풀렸을 때처럼 기쁘고 뇌가 반짝~ 깨이는 기분이다. 그래서 이 경이로움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기 위해서 또 와야 하는 것이다.

세 번째 네셔널 겔러리에 방문했을 때 렘브란트 작품이 마음에 담겼는데, 덕분에 네덜란드에 갔을 때 렘브란트 박물관을 일순위로 방문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의 자취는 경이로웠다.
좋은 영화는 극장 밖에서 시작되는 영화라고 한다. 옆사람이랑도 이야기하고 싶고 혼자 생각도 해보고 블로그에도 쓰고 싶은 것 말이다. 좋은 책도 좋은 그림도 그런 것 같다. 작품이 오래도록 마음에 담겼다가 나의 갈대같은 신념에 뚱뚱한 기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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