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lly Pok 밀리폭 Apr 01. 2022

인도끝, 차선과 맞닿아 있는 보도블록엣지로 발걸음을..

그런 하루

평화로웠다.

그런 하루였다.


영국에 YMS 비자를 받아 왔고, 원하던 직장도 얻었다. 내 일은 요양병원에서 입소노인을 돌보는 요양보호사였다. 직접적으로 일의 보람을 성취할 수 있는 일. 한국보다 일의 강도면에서도 약하고, 워라벨이 더 잘 유지되는 계약과 환경.  한국 근무지였던 회계부 등 사무실 업무는 보람을 직접적으로 느끼기 힘들었다. 월급이 위안일 뿐.

돌봄은 나랑 딱 맞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일이었다. 취직한 지 6개월쯤 지나… 적응도 끝났고 좋은 동료들과 따뜻한 어르신들과 보내는 생활은 안정적이었다.


한국에서 평범한 부모님 밑에서 삼 남매 중 둘째로 잘 컸다. 힘들다고 주변에 찡찡거릴 때면 “넌 긍정적이니까 괜찮을 거야!”라며 다들 큰 걱정 안 하는 이미지가 나였다.


그날은 영국의 흐릿한 겨울 날씨 때문이었을까?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밤거리에 사람은 거의 없었고, 높은 가로등이 희미하게 인도를 비추고 있었으며, 바람은 적당히 찼다. 충동적으로 위험한 차도와 맞닿은 인도의 끝 엣지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오죽하면 살면서 제일 힘들었던 일이 늦둥이 막내 동생이 태어난 것이었을까. 마마걸로 살다가 십년만에 엄마의 사랑을 동생에게 뺏겼다는 게 생애 가장 힘들었던 감정이었다. 그때도 학원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큰 길 대신 항상 어두운 골목길을 골랐다. 스스럼없이 다니며 가끔 침을 꼴딱 삼키고 등골 오싹해지는 순간을 즐겼다. 유일한 일탈이자 위로였다. 밤 골목길엔 사람 자체가 잘 없는데, 불량 청소년들이나 술 취한 아저씨들이 이따금 나타나 시비를 걸었다. 당시엔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스스로 죽을 용기는 없없지만, 당장 죽음이 닥친다고 생각해도 무섭지 않았다. 그런 중2병 이후로 근 이십년만에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이번엔 딱히 죽고 싶었던 것도, 삶이 힘들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나는 인도의 가운데에서 걷다가, 차도 뒤에서 큰 트럭이 달리는 ‘부앙’ 소리에 놀라 덜컥 인도 안쪽으로 발을 디뎠다. 그리고 문득 두렵지가 않아서, 그 부앙 소리에 소름이 돋고 오싹한 것이 나쁘지 않아서, 뒤돌아보지 않은채 인도 끝 차선과 맞닿아 있는 보도블록엣지로 발걸음을 옮겨 걸었을 뿐이었다. 내가 위험해 보였는지 차들이 등 뒤로 커다란 클락션을 울리며 내게 가까워졌다가 서서히 멀어졌다. 더 희열이 휘감았다.


평소 같았으면 인도의 제일 안쪽으로 자리부터 옮겼을 것이다. 부앙 소리에 심장이 떨리고 클락션 소리에 화들짝 놀랐을 테고 이따금 뒤를 돌아보며 불안함에 빨리 걸었을 텐데..

유독 그날은 그 불안함, 오싹함이 편안했다.

그 커다란 엔진의 부앙 소리와 빵 하는 클락션 소리에, 금방이라도 나를 칠 것 같은 그 거리감이 느껴져서 가슴이 철렁했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여졌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날 하루 이십 분. 딱 그 정도, 차도와 맞닿은 인도의 끝 엣지에서 천천히 걸었다.


스스로 죽을 용기는 없고, 누가 혹시 나를 죽여준다면 억울할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든 어느 하루였다.

이전 13화 렘브란트: 그의 삶이 담긴 노년의 자화상을 애정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