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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lly Pok 밀리폭 Feb 09. 2023

잘지내냐는 말 한마디의 폭력.

2017. 영국에서 백수 1년의 끝에서…

잘지내나는 말이 폭력으로 느껴졌던 지난 일년.
정말이지 한국으로부터 그런 안부가 올 때면 하루종일 기분이 언짢고 짜증과 서러움이 몰려오기도 했다.

"그래 나 백수다!"

이말을 얼마나 포장하고 예쁘게 돌려서 말하며 이미지 관리를 해야 하는 것인가..

특히 2016년에는 직장친목도모 뿐 아니라 독서모임이다, 인생학교다 등등 대외적인 활동이 많았던 한 해라 SNS 를 통해 알고 지내는 지인들이 많았다.
좋은 모임이었던 만큼 소통의 즐거움을 준 멋진 사람들이었다. 긍정적인 영향이었고 다들 멋졌다.
하지만 좋은 사람과 친한 사람은 다른 것이다. 친한 친구에게도 꺼내기 어려운 말.. 나의 쭈굴쭈굴한 이면을 타국에서까지 친구에게 터놓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내 절친 대부분은 결혼을 해서 육아전쟁중이기도 하기에 나와 공유할 일상이 너무 달라져 버렸다. 있다해도 학창시절처럼 쫑알거릴 여유가 없기도 하다.

그런데 그냥 지인의 연락은 여러 이유 댈 것도 없이 욱하는 강한 반감이 밀려왔다.
마치 꿈이 뭐예요? 라는 말이 정말 꿈을 묻는 것이 아닌 진로를 묻는 말이며, 꿈을 이루려고 뭘하고 있는지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확인하며 미래 내 역량을 재기 위한 질문인 것처럼 말이다.
내게 ‘꿈’은 생각만으로 힘이 나는 것이며 미래에 이루면 좋고 이루지 않아도 품고 있는 희망만으로 즐거운 것인데 말이다.
여하튼, 작년부터 한국에서 쓰던 카톡계정도 바꾸고 페이스북, 인스타도 싹 지웠다.
자격지심으로 똘똘뭉쳐 있다보니, 심지어 영국에 테러가 많자 괜찮냐고 묻는 안부조차 공포로 다가왔다.
심지어 부모님께 보이스톡, 비디오톡은 지난 십개월간 한 두 번 한 정도였고 카톡도 한달에 한번 할까 말까..였다. 가족 카톡방도 거의 매번 읽씹하는 수준이었다. 안그래도 나의 해외행을 매번 현실도피로 정의하고 있는 가족들에게 확인 사살 당하고 싶지 않았다. 뭐 말만 하고 뭐하고 있는지 확인하려 드니까 할말 없게 만든걸 누굴 탓하리오...

이와중에, 영국오고 나서 지금꺼지 정기적으로 여섯번이나 안부를 물은 분이 있었다. 어른이셨고 따뜻한 말이었지만 솔직히 “다음에 한번 만나요.”라는 지나가는 인사처럼 의미없는 말이었다. 씹기는 뭣해서 세 번까지 짧은 인사부터, 관심에 대한 감사인사와 어떻게 지내는지 장문의 메시지까지 보낸 터였다. 그런데 네번째 안부를 받자 폭발하고 말았다. 내가 “백수”라고 세 번이나 웃으며 성심성의껏 말했는데 또 묻고 싶냔 말이다. 그런 카톡에 답을 한 날은 나의 하루가 무너진다고… 젠장. 그날 컨디션도 별로 였었겠지만 내가 왜 이 카톡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연이란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모르기도 하고, 항상 진심으로 다정하게 사람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었지만, 네번째 안부카톡으로 인해 이 사람과는 다시는 보고싶지 않다는 미운 마음이 피어났다. 순간 스트레스받는 마음도 딱 접고 과감히 생깠다. 그런데 얼마나 집요한지 한 달 뒤 쯤 다시 카톡을 보냈고 한달 또 뒤에 왓쯔 앱으로 또 말을 걸었다. 소오름.. 세상에 별별 사람이 다 있구나.. 내 안부에 왜 집착하는거지?  진짜 완전히 싫어졌다...
괜히 이 사건 휴유증으로 베프들의 연락까지 몇달간 생까며 잠수탔다..
나의 그릇은 딱 요기까지. 모두를 진심으로 대하되 모두를 신뢰하지 마라는 말이 있는데, 지금 나의 진심은 동이났고 신뢰를 쌓는 행위는 하고 싶지 않다. 날 내버려둬요. 제발.

But, 취직하자마자 신기할만큼 자격지심이 내려놓아졌다. 백수일때의 간절함, 찌질함.. 이 감정 잊지않겠다고 이렇게 글을 남기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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