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lly Pok 밀리폭 Feb 09. 2023

영국에서 가족 같은 존재였던, 그들

요양병원 입소노인들과의 관계

그들은 혈혈단신으로 도착한 영국이란 나라에서 만난 유일한 나의 가족이었다. 하루에 13시간 이상 함께 했고, 함께 있는 동안 나의 관심은 오롯이 그들에게 있었다. 잘 잤는지, 밥은 잘 먹는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화장실은 잘 가는지, 간단한 세면부터 배변활동, 샤워까지 나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심지어 의료 기록, care plan까지 꾀고 있었기 때문에 저혈압인 메리에게는 물을 많이 먹이고, 고혈압인  알렉스에게는 다리를 올리게 하기 위해 신경 썼다. 젊은 시절 앤의 앨범도 함께 보고, 그들의 과거 직업, 고향도 다 알고 있었으며, 찾아오는 가족들과도 가까워졌다. 어떻게 가족이 아닐 수 있으랴...

 2년 동안 타국에서 산다는 것은 정말 외로운 일이다. 영국에서 가족같이 지낸 한국친구들이 듣는다면 섭섭할지 모르지만 요양병원 환자들이 내게 더 가족 같았다. 그들은 절대적으로 내게 거짓이 없어 믿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스킨십을 하는 유일한 존재였다.  출근 때, 퇴근 때마다 하는 인사 비쥬와 포옹은 내게 가장 따뜻한 인사였다. 또 매일 샤워를 시킬 때, 배변을 케어할 때 등 하루종일 우리의 살은 몇 번이고 닿았다. 하루종일 옆에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가장 물리적 거리가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24시간을 내가 알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 기억을 잊고 거짓말을 하는게 증상인 ‘치매’라는 병명과는 반대로 내겐 가장 믿을 수 있는 존재, 매일 생활을 함께하는 사람들이었다.

자주 그들이 꼬끝 찡하게 보고싶다. 환한 미소와 포옹, 따뜻한 말들, 별 의미없이 일상적으로 밥먹고 텔레비전보던 순간까지 그립다. 앞으로 다시 못볼 거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전 08화 호칭의 중요성: 요양병원 어르신들이라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