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호주에 이은 현실도피 세 번째, 그리고 사회복지사의 꿈
또다시 도진 현실도피였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했던 일이 외국 석유화학회사였어. 예전에 대기업에서 일할 때도 느꼈던 거지만 너무나 경쟁적인 곳이지. 모두가 열심히 일하는데 그중 리더가 되는 건 소수이니까. 나는 행정 사무원이었으니 그 경쟁구조에서 빠진 사람인데도 그 시스템을 바라보는 것조차 힘들더라고, 숨 막히는 눈치게임, 일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고 줄을 잘 서야 하고 그들이 치열해 보였어. 동시에 나는 거기에 끼지 못하는 아웃사이더 신분이라는 것에도 열등감을 느꼈던 것 같고. 그러던 중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거야.”
“호스피스?”
“6개월 이내의 시한부 판정을 받은 환자들을 위한 병원이야. 과잉진료를 하지 않고 고통을 완화해서 환자가 평안한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하는 진료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와, 어디서든 봉사활동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호스피스에서 봉사활동이라니. 정말 의미 있는 일이구나. 왜 시작하게 된 거야? 환자 죽는 것도 본 적 있어? 무서울 것 같은데. 힘들지 않았어?”
“아직 임종을 본 적은 없어. 임종 직전까지 같이 있다가 퇴근한 적은 있지만… 시체는 봤지… 돌아가시고 나면 함께 했던 대화들이 생각나고 보고 싶기도 안타깝기도 하지. 근데 사람은 누구나 죽는 걸. 영생하는 사람은 없잖아. 어떻게 죽는지 보는 일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잘 지낼 수 있도록 돕는 일이야.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어떻게 잘 살아내고 잘 보내드릴 수 있는지 공부하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 죽음에 대해서도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어.”
“대단하다. 난 못할 것 같은데. 진짜 착하다.”
안 그래도 큰 그의 눈이 놀라움으로 더 커졌다.
“착한 거랑 관계없어. 다 나를 위한 거니까. 내가 잘하고 싶은 일을 찾아 헤맸을 뿐이야. 그러다 호스피스 완화의료 시스템에 꽂힌 거지. 무엇보다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성직자, 봉사자 간의 협업이 가장 중요한 게 좋았어. 경쟁구도로 1등을 향해서 달려가는 게 아니라 환자를 가장 위하는 방향으로 함께 만들어 가는 일이라는 게 너무나 감동적이더라고. 드디어 내가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어.
근데 잘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고 사회복지사가 하고 싶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어. 부모님께 면목이 없었지. 그래서 영국에 가기로 했어. 영어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싶기도 했고 영국 워킹홀리데이 비자(YMS)가 2년짜리인데 영국 가서 일하면서 한국 온라인 학점은행제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올 생각이었어. 1년이면 됐으니까. 하지만 허상이 잔뜩 낀 이 계획은 잘되지 않았고 다 꼬이고 말았지. 1년을 백수로서 철저하게 고뇌했으니까.”
<5:1 경쟁률의 운 빨>
미국 갈 때 에이전시를 통해서 갔었어. 서류 준비에 도움을 많이 받았지. 호주 갈 때도 스스로 준비하기 귀찮아서 대행을 했었고, 직접 하진 않았었지만 본 게 있어서 서류 준비하는 데는 도가 트더라고. 그래서 영국은 스스로 준비했지. 영국 워홀은 경쟁률이 5:1 정도 된다고 해. 떨어질 각오하고 있었고 되면 가는 거고 안 돼도 아쉽진 않았어. 31살의 많은 나이에 다시 나간다는 것이 두렵기도 했거든. 되면 운명이다라는 마음으로 도전했어. 근데 한 번 만에 된 거야. 영국 가보니까 두 번, 세 번, 네 번까지도 재도전해서 온 친구들이 많더라고. 나는 운이 좋았어.
<이렇게 내 멋대로 살았어도 괜찮을까?>
2005년: 스무 살. 대학 입학
2008년: 미국, 뉴욕, J-1(인턴) 비자, 한인마트, Inventory(재고관리부)에서 Invoice 관리
2009년: 경영학과 4학년
2010년: 졸업 후, 회계부 취직
2012년: 퇴사 후 국토대장정 참가, 호주 워킹 홀리데이 준비
2013년: 호주, 골드코스트, 워킹홀리데이 비자, 어학연수 & 폰액세서리 판매
2014년: 한국에서 엔지니어링 팀 취직
2016년: 퇴사 후, 영국, 런던, YMS 비자, 런더너 백수 1년
2017년: 치매요양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근무. 호스피스 봉사활동 동시 시작.
2018년: 퇴사 후 추석에 한국으로 복귀.
대학교 4학년을 앞두고 휴학하고 23살에 뉴욕에 J-1(인턴) 비자로 한인마트, Inventory(재고관리부)에서 Invoice 관리를 일 년 하고 돌아왔다. 경영학을 이수하고 회계부서에 취직해 2년을 근무했다. 27살 또다시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떠났다. 어학연수 후 폰 액세서리 판매를 6개월 했다. 한국에 돌아와 엔지니어링 팀에서 서무직으로 2년을 근무했다. 31살, 마지막 워킹 홀리데이로 가기로 결정했다. 뭐 때문이었을까? 매 번 가슴 뛰는 이유가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내 삶에 습관이 되어버린, 또다시 도진 현실도피였다. 내가 사는 곳이, 나 자신이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아메리칸드림, 오스트레일리안 드림, 브리티쉬 드림…. 떠나면 뭔가 좋은 기회가 주어질 것만 같았던 것 같다. 나는 지금 서른셋 루저가 된 기분이다. 내 인생 앞으로 괜찮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