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런던 호스피스 병원에 취직하다.
취직하게된 계기가 뭐냐고 묻는다면, 한마디로는 “담배덕분이요.” 라고 대답하겠다.
오프라인에서 이력서 접수조차 두 번 거절 당한 이후, 온라인 이력서 지원만 한지 9개월째, 마냥 기다릴 수 없어졌다. 해가 바뀌는 동안, 한국에서 끌어온 돈은 다 썼고 더이상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아무런 성과없이 돈만 쓰고 마음의 병만 얻어서 한국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끔찍해졌다. 또 까이더라도 도전해야만 했다. 면접 때, 단정해보이려고 검은 정장바지에 하얀와이셔츠까지 구입했다. 단정한 화장과 신뢰가는 미소도 장착했다. 다시 시작이다!
호스피스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한달동안 거절당했다. 호스피스 환자들을 케어하는 일은 유독 예민하기 때문에 듣보잡 비자를 가졌다는 것부터 경계당했다. 환자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게 중요한데 나처럼 딱봐도 이방인 같은 직원은 없었다. 영국시민권자인 필리핀 직원은 있지만, 동아시아 동양인은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EU비자를 가지고 있는 유럽인은 많지만 한국인이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영국에 와서 병원에 취업문을 두드린 케이스는 없는 모양이었다. 한 달을 찾아다니며 면전에서 거절당한 후 계획을 수정했다. 호스피스병원이라면, 곁눈질로 호스피스 시스템을 볼 수 있는 곳이면 주방이든 청소일이든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꼭 호스피스가 아니더라도 모든 병원에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호스피스 병동은 많지 않은데 병원으로 넓히니 이력서를 넣을 기회가 훨신 많아졌다.
런던의 중심부터 3존범위까지 지정해두고 서쪽의 호스피스 병원부터 찾아갔다. 병원 대부분이 입구에서부터 문이 잠겨 있기 때문에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하고 열리기까지도 난관이었다. 떨떠름하게 꼬치꼬치 내가 누구인지 케묻는 곳이 있었지만, 그래도 문도 안열어주고 문전박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안녕하세요. 저는 밀리폭이라고 합니다. 이력서를 제출하고 싶습니다. 문 열어주실 수 있나요?”
백수1년만에 다시 낸 용기였다. 실행하기까지 얼마나 망설였는지... 별것도 아닐 것 같은데 생각만으로 식은땀이 나고, 수 없이 할 수 있다고 되내인 후에 겨우 용기낸 걸음이었다. 마음의 병이 나날이 깊어지고 있었는데 무슨 용기였을까? 비자가 15개월밖에 남지 않아서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했던 것같다. 이 놈의 영어울렁증, 대인기피증, 자격지심, 구직포기자... 왜 진작 용기를 못냈던 것인지...
리셉션에서는 담당자도 안불러주고 “두고 가세요.”가 일반적이었다. 혹은 난감한 표정으로 “온라인지원만 가능해요.” 라며 이력서를 제출하는 것조차 거절당했다. 그렇게 두달쯤 지나니 확실히 훨씬 여유가 생겼다. 벨누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고, 매번 같은 말을 하니 영어쓸 때의 긴장감도 많이 줄었다. 거절당하는 만큼 간절해졌고 오기가 생겼다. 온라인 지원도 모든 병원과 통합 연계된 사이트가 있고, 각 호스피스 병원마다 홈페이지가 있어 따로 지원 할 수도 있었다. 둘 다 부지런히 하고 있었는데, 어느 호스피스 홈페이지에서 몇 시간을 고군분투하며 겨우 입력을 마쳤는데, 모든 서류를 제출하자마자 바로 “rejected” 거절되었다는 문구가 바로 떴다. 비자때문이었다. 분명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비자인데 자동프로그램에게는 생소한 모양이었다. 좌절하지 않고 직접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동쪽의 호스피스에 방문했을 때 할머니뻘의 인자한 리셉셔니스트가 나를 반겼다. 온라인시스템 문제로 거절당해서 직접 이력서를 내러 왔다, 꼭 취직하고 싶다고 말할 때 그 절박함이 전해졌는지, 잠시 기다리라고 해주었다. 그리고 오분 뒤 처음으로 인사담당자를 직접 만났다. 면접을 위한 오피스로 이동하지는 않았지만 어색하고 짧은 대화를 했다. 담당자는 곤혹스러운 모양이었다. 이렇게 이력서 들고 찾아온 경우는 없다고 했다. 우선 이력서 살펴보고 다시 연락주겠다고 덧붙였다.
‘아... 이렇게 또 거절당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절망이 밀려왔다. 애써 눈물을 참으며 호스피스 병원에서 일할 수만 있다면 어떤 포지션이든 열심히 하겠다고 단숨에 내뱉았고, 일이 아니더라도 봉사활동이라도 꼭 하고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담당자 이메일주소를 받아서 인사를 한 뒤 뒤돌아서 나왔다.
비참해졌다. 다리에 힘이풀려 쉬려고 두리번 거리다 호스피스 병원 옆의 골목에 벤치가 보였다. 털썩 주져앉아 하늘을 보니 눈물이 주륵주륵 흘렀다. 해가 구름에 가려 어두웠다가, 구름을 벗어나 반짝였다가... 바람이 내 뜨거운 눈물을 스쳤다. 그때 아까 인사담당자였던 여성분이 내쪽으로 걸어왔다. 얼른 눈물을 훔치고 진정시켰다. 알고보니 골목에 있던 이 벤치는 흡연구역이었던 것이다. 인사담당자는 나를 힐끔 보고 우리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내가 빨간 눈으로 서둘러 벤치를 벗어나려고 하자, 계속 있어도 괜찮다며 자기가 갈거리고 따뜻한 미소를 보여주고 떠났다. 이게 결정적이었나 보다. 그녀가 나의 간절함을 보았고, 선한 사람으로 봐줬던 것 같다.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지금도 이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 벤치는 골목 벤치가 아니라 호스피스 내 환자를 위한 공간 이다.
집에서 호스피스 병원까지의 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