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아 [시즌1] 4장. 도시에서 밀려난 사람들

어디서 살 수 있는가

by 밀리폭

허미래의 세 번째 증언이 끝났을 때,

나는 잠시 그 말의 무게를 곱씹었다.


로비스트가 기준을 틀어쥐면 정책이 왜곡되고,

정책이 왜곡되면 규범이 약해지며,

그 결과 사회는 조용히 불안정해진다.


그 흐름은 명확했고,

그래서 더 섬뜩했다.


허미래는 자연스럽게 다음 화제로 넘어갔다.


“규범이 이미 무너진 사회에서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곳이 어디인지

이야기해 볼까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1. 도시는 이미 소리 없이 붕괴되고 있다


“도시 붕괴는

범죄보다 더 조용하게 진행됩니다.”


허미래는

바르셀로나, 리스본, 암스테르담 지도를

차례로 펼쳤다.


“관광객이 늘어나면

도시는 활기를 되찾은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한결이 바로 반응했다.


“에어비앤비, 단기임대… 그 문제?”


허미래가 고개를 끄덕였다.


“관광 수요가 높아지자

집주인들은 장기임대 대신

단기임대를 선택했습니다.

수익이 훨씬 높았으니까요.”


나는 이미 다음 장면을 떠올렸다.


“…그러면 월세가 오르겠군요.”


“그렇습니다.”


허미래는 종이에 간단한 흐름도를 그렸다.


단기임대 수익 증가

→ 장기임대 감소

→ 월세 폭등

→ 원주민 생활권 붕괴

→ 도시 밖으로의 이탈


“바르셀로나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입니다.


관광객이 넘쳐나는 도시는

정작 그 도시를 살아낸 사람들을

조용히 밀어내기 시작했어요.”


도시의 번영이

시민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잔인한 역설이었다.


도시는
그렇게 사람들을
조용히 내보내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처음엔
떠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다음엔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침묵이 깨졌다.


바르셀로나의 거리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집값 그래프를 들고 말하지 않았다.


“Tourists go home.”
“Your holiday is my pain.”


구호는
정중하지 않았고,
분노는
관리되지 않았다.


관광객을 향해
물총이 쏘아졌고,
호텔 앞에서는
연막탄이 터졌다.


테이프로 봉쇄된 출입구 앞에서
사람들은 말했다.


이건
관광객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살 곳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도시는
활기를 얻었지만,
그 활기의 비용을
누가 치르고 있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한결이 낮게 말했다.


“…이건
도시 문제라기보다
분배 문제네요.”


허미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관광이 과잉된 게 아니라,
보상이 비어 있었던 거죠.”


2. 모두가 소비하지만, 그 소비세는 모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허미래는

다음 지점을 짚었다.


“문제의 핵심은

관광객 자체가 아닙니다.

더 근본적인 구조가 있어요.”


그녀는 종이에

‘소비’라고 적었다.


“관광객이 소비하든,

주민이 소비하든

도시에서는 항상 소비세가 발생합니다.


유럽처럼 소비세가

17~27%에 이르는

나라들도 있죠.”


나는 물었다.


“그 소비세는

어디로 가나요?”


“대부분

기존 복지 체계를 유지하는 데 쓰입니다.

하지만 복지는 조건형이기 때문에

사각지대는 피할 수 없어요.”


이한결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금은 냈는데,

삶은 나아지지 않는 사람들이

생기는 거군요.”


“맞습니다.”


허미래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이 구조에서는

도시가 번영해도

시민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

이상한 상황이 반복됩니다.”



3. 소비세 약 20~35% 사회— 그중 10%를 ‘기본소득 배당’으로 고정하다


“그래서 기본소득 사회는

이렇게 설계했습니다.”


허미래는 노트에 크게 적었다.


스페인: 소비세 21% → 31%

이 중 최소 10%

전 국민 기본소득 배당으로 고정


나는 미심쩍게 물었다.


“… 그렇다면

기존 복지는 줄어드는 건가요?”


“아닙니다.”


허미래는 고개를 저었다.


“기존 복지는 그대로 둡니다.

다만 소비세 구조를 재정렬해

‘누구나 내는 세금의 일부는

누구나 반드시 돌려받는다’는

원칙을 만든 겁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기존 복지의 일부는

점차 기본소득으로 대체되기 시작했죠.


그녀는 정리하듯 덧붙였다.


복지: 조건형 안전망

기본소득 배당: 무조건형 바닥선


두 제도는

경쟁이 아닌

공존 구조였다.


나는 적어두었다.


“… 도시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


허미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4. 도시 배당이 만든 새로운 균형


“이 제도는

도시 구조에

분명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허미래는

손가락으로 항목을 짚었다.


1) 단기임대 확대로 발생한 피해를 시민이 직접 보상받는다.

2) 소비 증가 → 소비세 증가 → 기본소득 증가의 선순환이 형성된다.

3) 도시가 활발할수록, 거주하는 시민도 함께 이득을 본다.

4) 월세 상승 압박이 완화되고, 도시 이탈 속도가 늦춰진다.


이한결이 감탄했다.


“… 관광객이 많아도

그 혜택이 주민에게 돌아가는 구조군요.”


“그렇습니다.”


허미래는 짧게 웃었다.


“이건

관광객을 적으로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도시가 만들어낸 부를

도시 전체가 공유하는 방식이에요.”



5. 남아 있는 갈등, 그러나 바뀐 전제


허미래는 잠시 말을 멈췄다.


“물론

아무 논쟁도 없진 않았습니다.”


문제는

‘배당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나눌 것인가’였다.


그 사회는

소비세 10% p를

기본소득 배당으로 고정하되,

절반은 전 국민에게,

절반은 해당 지역 주민에게

배분했다.


시에서 소비가 많을수록

도시 주민이 더 체감하는 구조였다.


“그 선택이

또 다른 정치적 긴장을 만들긴 했죠.

도시 붕괴를 늦추고

시민을 지키기 위한 제도였지만,

동시에

국가 대 지방,

도시 대 도시의 긴장도

함께 만들어졌어요.

정책은

언제나

반대편을 만들어내니까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어요.

도시가 번영할수록

시민이 밀려나는 구조는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었죠.”



6. 증언 4– 도시를 지키는 소비세 배당


증언 4.

소비세 20~35% 중

최소 10% p를

전 국민 기본소득 5%

지역주민 배당 5%

로 고정해

도시의 번영을

시민의 생존과 연결하라.


허미래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흥미로운 건

이 제도를 가장 빨리 받아들인 나라들이

원래 소비세가 낮았던 곳들이었다는 점이에요.”


이어

한국과 미국을 예로 들었다.


“유럽은 이미

세금을 많이 내고 있다는 인식이 강했죠.

그래서 증세에 저항이 컸어요.

증세할 여력이 없었으니까요.”


반대로

한국과 미국은 달랐다.


“한국은 소비세 10%,

미국은 주마다 다르지만 3~9% 수준.

여기에 10%를 더 얹는 구조가

덜 부담스럽게 느껴졌죠.”


나는 미국을 떠올리며 말했다.


“코로나 이후

팁은 사실상

또 하나의 세금이 되어버렸잖아요.

20%가 기본이 되었고,

개인에게 큰 부담이 되었죠.”


그 사회는

팁의 비중을 낮추고,

그만큼을

모두에게 돌아오는

소비세 배당으로 전환했다.


“사람들은

그제야 깨달았어요.


이미 내고 있던 돈이

누군가의 몫이 아니라

자기 삶의 바닥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걸요.”


허미래는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기본소득 증세에

가장 덜 저항한 나라들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불평등을

개인에게 떠넘겨왔던

나라들이었습니다.”

이전 04화가이아 [시즌1] 3장. 관리되지 않는 질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