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를 알고 있는가
네 번째 설계에 대한 이야기가 끝났을 때,
도시는 어떻게 사람을 밀어내는지,
그리고 소비세가 어떻게 그 균열을 늦출 수 있는지에 대해
나는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허미래는
그날의 대화를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잠시 침묵하더니,
마치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내는 것처럼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구기본소득 이야기를 하면
가장 먼저 이 질문을 합니다.
전 세계인의 개인식별이 가능한가.”
그 말에
공기가 미세하게 달라졌다.
누군가 결국
입 밖으로 꺼냈다.
“전 세계 개인을 식별한다고요?
그건 프라이버시 침해 아닌가요?”
허미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당한 질문입니다.
다만,
한 가지 전제가 빠져 있어요.”
그녀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우리는 이미
프라이버시가 온전히 보장된 세계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미국에서
집을 빌리기 위해
나 자신을 제출해야 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집을 임대하기 위해 제출해야 했던 서류들.
운전면허증,
소셜시큐리티 넘버(SSN),
범죄 기록 조회 동의서,
재직증명서,
급여 명세서,
세금 신고 내역,
그리고 개인을 더 잘 식별하기 위한
연락처, 이전 거주지,
함께 사는 사람에 대한 상세한 질문들.
집을 빌리기 위해
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직접 해명할 필요는 없었다.
대신
내가 얼마나 투명한 사람인지를
증명해야 했다.
나열된 항목들은
질문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조건에 가까웠다.
어디서 왔는가.
얼마나 오래 머물 수 있는가.
우리가 연락하면 언제든 응답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시스템에서
사라질 가능성은 없는가.
이 모든 것을 제출해야만
나는 겨우
최소한의 ‘거주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서류가 먼저 통과해야 했고,
그 다음에야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신분증과 보증금만으로도 가능했던 일이었다.
‘미국은 개인정보 보호가 강한 나라’라는 이미지와 달리,
현실의 미국은
민간 기업이
개인의 소득, 신용, 납세 이력까지
광범위하게 요구하고
자연스럽게 축적하는 사회였다.
허미래는
내 이야기를 들으며
한 번도 눈을 떼지 않았다.
“그걸 설명하는 데
이미 많은 에너지를 쓰셨겠죠.”
그녀는 낮게 말했다.
“이건 심문이 아니에요.
하지만
심문보다 더 많은 걸 알아내죠.”
그 말 앞에서
나는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 사회는
문제를 일으킬 사람을
가려내고 있는 게 아니었다.
대신,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부터
시스템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범죄자는
나중의 문제였다.
먼저 걸러지는 건
식별되지 않는 사람,
증명할 수 없는 사람,
기록으로 이어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허미래는
조용히 덧붙였다.
“중요한 건,
이 정보들이 대부분
국가가 아니라
기업의 서버에 저장된다는 사실입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프라이버시는
보호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민간 시장에서
관리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전에 또 하나의 경험.
비자를 신청할 때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H-1B 워킹비자를 준비하며 작성한
미국 비자 신청서, DS-160.
그 안에는
이런 질문이 있었다.
“지난 5년간 사용한
모든 소셜미디어 계정 ID를 기재하시오.”
그 질문은
내가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내가 누구였는지를 묻고 있었다.
계정만이 아니었다.
내 삶을
설명해야 했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부모는 누구인지,
어디를 다녔고,
어디에서 일했는지,
지난 몇 년간 어느 나라를 오갔는지.
심지어
온라인에서 어떤 이름으로
무슨 말을 남겼는지도.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감시당하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온라인에 남긴 흔적이
나라는 사람을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불안.
허미래는 말했다.
“그 질문이 불편한 이유는
정부가 당신의 생각을
당장 검열해서가 아닙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미 남아 있는 디지털 흔적이
당신의 ‘위험도’를
평가하는 자료가 되기 때문이죠.”
그 순간,
문제의 본질이 또렷해졌다.
그 서류들은
“당신은 위험한가?”라고 묻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묻고 있었다.
이 사람은
추적 가능한가.
연결 관계가 명확한가.
이야기가 끊기지 않는가.
프라이버시는
사라질 예정이 아니었다.
이미
평가의 대상이었고,
분류의 기준이 되어 있었다.
허미래는
서류 목록을 천천히 훑어보며 말했다.
“이건 감시가 아니에요.
이미 끝난 식별이죠.”
― 이 지점에서, 선이 드러났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한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잠깐만요.”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분명했다.
“그런데 말씀하신 건
국가가 개인을 식별하는 수준이 아니라,
지구 전체가
개인을 하나의 단위로 관리한다는 이야기잖아요.”
허미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하지 않았다.
“네. 맞습니다.”
나는 그제야
우리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자각했다.
“그건…”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까지 이야기해 온
국가 기본소득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 아닌가요?”
허미래는 잠시 우리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래서 불편한 겁니다.
누가 책임지는지,
어디까지가 권한인지,
아직 아무도 익숙하지 않으니까요.”
이한결이 다시 물었다.
“이게 가능하다구요?
국가 단위에서도
아직 합의되지 않은 문제를
지구 단위로요?”
허미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이미 그렇게 살다 왔습니다.”
허미래는 사람들이 흔히 의지하는
이분법을 꺼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죠.
중국은 국가가 감시하고,
미국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한다고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하지만
개인이 체감하는 불안과
자유의 제약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두 구조는 그렇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중국은
국가가 직접 정보를 수집한다.
미국은
정부와 기업이
‘목적’이라는 이름으로
정보를 요구한다.
그러나 결과는 비슷하다.
개인은 언제나 식별되고,
언제나 평가될 가능성 속에 놓인다.
허미래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프라이버시를 존중한다는 말은
이제
‘아무도 나를 모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허미래는 이번엔
한국의 사례를 꺼냈다.
“한국에서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팡팡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
수천만 건,
3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영향을 받았죠.”
이름, 연락처, 주소, 구매 기록.
사람들의 일상은
한 번의 사고로
외부로 흘러나갔다.
그리고
이건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허미래는 분명히 말했다.
“이건 감시국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플랫폼 사회에서
개인정보는 이미
구조적으로 노출돼 있습니다.”
허미래는 잠시 숨을 고르거, 말을 이었다.
“신용카드, 구글, SNS, 유튜브는
감시가 아니고 자유라고 생각합니까?”
국가가 수집하지 않아도,
기업은 이미 가지고 있었고,
그 기업은 완벽하지 않았다.
허미래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말했다.
“과거에는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태어난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곳에서 살고,
국경을 넘지 않는 삶.
“그런 세계라면
모든 개인을 식별할 필요는 없었겠죠.”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사람들은 이동하고,
국경을 넘고,
짧은 시간 안에
여러 국가의 시스템을 통과한다.
국가는 묻게 된다.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가.
무엇을 했는가.
어떤 위험 요소를 갖고 있는가.
허미래는 분명히 말했다.
“이 질문 자체를
없애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식별은
통제의 욕망 때문만이 아니라,
이동하는 세계의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이기도 했다.
허미래는
이 증언의 결론을 분명히 했다.
“그래서 지구기본소득이
위험한 이유는
개인을 식별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녀는 낮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개인은 식별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식별 정보가
어디에 있고,
누가 관리하며,
무엇을 위해 쓰이느냐입니다.”
그녀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지구기본소득은
감시를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복 지급을 막고,
출생과 사망을 구분하고,
국경을 넘는 소비와 책임을 연결하려면
식별은 필수입니다.”
이한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결국
우리가 두려워하던 사회와
다를 게 없는 건가요?”
허미래는 고개를 저었다.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누가 식별하느냐,
어떻게 관리하느냐,
무엇을 위해 쓰이느냐.
이 세 가지가 전부 다릅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지구기본소득의 개인 식별은
빅브라더스처럼
통제를 위한 장치가 아니라,
분배와 책임을 연결하기 위한
최소 조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