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아 [시즌1] 7장. 지구 생태계 붕괴

지구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가

by 밀리폭

여섯 번째 증언은

사람들이

어떻게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는 감각,

언제든 손해 볼 수 있다는 불안,

멈추면 호구가 될 것 같던 상태가

조금씩 느슨해진 사회.


그제야 나는

허미래가 말하던 ‘미래사회’가

단순한 복지 제도나

경제 모델이 아니라,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한

거대한 생태계 설계도라는 사실을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녀가 지도를 꺼내지도,

숫자를 적지도 않았다.


허미래는 잠시 말을 멈춘 뒤

조용히 말했다.


“이제는

인간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도시보다,

국가보다,

인류를 넘어선 이야기예요.”


“지구 전체의 이야기죠.”


나는 무의식적으로

숨을 삼켰다.


1. 우리가 버린 쓰레기는 어디로 가는가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진국이 버린 쓰레기가
어디로 가는지 아시나요?”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플라스틱, 전자 쓰레기,
노후 가전 같은 폐기물의 상당수는
‘재활용’이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나라로 수출됩니다.”


이한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그걸 분리하는 건
아이들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맨손으로, 안전장비도 없이
구형 스마트폰을 뜯고
그 안에서
구리, 납, 코발트를 긁어냅니다.

그 일을
아이들이 합니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렇게 분리된 금속은
다시 우리의 주얼리,
전자제품,
회로기판이 되어
선진국으로 돌아옵니다.”


나는 낮게 중얼거렸다.


“… 우리가 버린 독이
형태만 바꿔
다시 돌아오는 거군요.”



2. 바다도 하나의 ‘순환 장치’다


이번에는 바다 이야기였다.


“플라스틱은
결국 미세한 입자로 부서져
물고기와 플랑크톤의 몸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녀는 잠시
내 표정을 살폈다.


“그리고
그 물고기를
우리가 먹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차분하게 덧붙였다.


“태평양 한가운데,
하와이 근처에는
나라 하나만 한 쓰레기 섬이 있습니다.”


그녀는 지도를 꺼내지 않았다.


숫자도 말하지 않았다.


“누가 버린 건지
이제는 알 수도 없고,
어느 나라 책임인지
구분하는 것도 불가능한 덩어리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쓰레기들은
파도와 해류를 따라
끊임없이 부서집니다.”


“보이지 않는 크기가 된 채

바다 전체로 퍼지고,
그 와중에도

새로운 쓰레기들은 계속 밀려옵니다.”


“그래서

그 섬은

줄어들지 않고

자꾸 커진다고 하죠.”


나는 숨을 고르듯
천천히 들이마시며 말했다.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에서 경고했던 건

단지 농약이 아니었네요.”


허미래가 나를 바라봤다.

나는 말을 이었다.


“인간이

버린 것이

어디로 사라질 거라고

믿어버리는 태도요.”

“사실

바다로 흘러가는 쓰레기는

전체의

0.5%도 안 된다고 하잖아요.”

“대부분은

보이지 않게

육지에 묻히고,

토양 속에 남고,

다른 나라의 땅에 쌓이죠.”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니까

바다가 특별히 더 더러운 게 아니라,

우리가

어디에 숨겨두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허미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구는 쓰레기통이 아닙니다.
버린 것을 감춰주는 장소도 아니고요.”


잠시 말을 고른 뒤,
분명하게 말했다.


“지구는
‘순환계’입니다.”


다시 침묵.


“우리가 버린 건
언젠가
형태를 바꿔
반드시 돌아옵니다.”


허미래는 잠시 말을 멈췄다.


“지금으로써는

쓰레기가 자연으로 돌아가고,

지구의 자기 조절 기능을 유지하기에는

지금의 규제와 노력만으로는

부족하죠.


그녀는 결론처럼 덧붙였다.


“대자본이

필요합니다.



3. 환경기금은 왜 ‘의무’여야 하는가


“그래서
제가 본 기본소득 사회에서는

매달 지급되는 기본소득의 일부가
환경기금으로
자동 공제됩니다.”


그녀는 분명히 말했다.


“선택이 아니라
모든 시민의 의무입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우리는 기본소득을 받는 동시에
그 일부를
사회에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할 권리도 함께 갖습니다.”


그녀는 구조를 정리하듯 차분히 말을 이었다.


“기본소득의 10%는
‘공동기여(Common Contribution)’로 설정됩니다.

이 중 9%는
각 개인이
자신의 가치와 신념에 따라
사용처를 직접 지정하는
‘공동기여 슬롯(Common Contribution Slot)’이고,

나머지 1%는
누구도 예외 없이
지구 환경을 위해 자동 적립되는
‘공동기여 풀(Common Contribution Pool)’입니다.”


나는 물었다.


“…그럼
사실상
또 다른 세금 아닌가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일반 세금과는 다릅니다.

공동기여는
정부 예산과 분리된
독립 기금이고,
정치나 기업의 간섭을 받지 않습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항목을 짚었다.


▷ 기본소득의 1%인 환경기금, 즉, 지구돌봄기금은
국민 동의 없이 줄이거나 없앨 수 없다.


▷ 정부 예산과 분리된
독립 재정으로 운용된다.


▷ 재활용 시스템 개혁,
생태 복원,
해양 정화 등
지구 회복에만 사용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지구를 위한
사회보험료 같은 개념이네요.”


그녀는 짧게 웃으며 말했다.


“정확한 표현이에요.”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그 사회는 생산성, 성장, GDP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전 지구적 생명 생태주의적 관점으로 방향을 틀던 순간이었죠.”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그 사회는

생산성, 성장, GDP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전 지구적 생명 생태주의적 관점으로

방향을 틀던 순간이었죠.”


잠시 멈췄다가 덧붙였다.


“다만,

이게 이론이 좋아서

천천히 합의돼서 온 변화라고 생각하면

조금 다릅니다.

그때도 기본소득은

여전히 공짜 돈이냐, 사회 안전장치냐를 두고

프레임 싸움이 아주 팽팽했어요.

논쟁적이었죠.”


그녀는 시선을 잠시

아래로 떨어뜨렸다가

다시 올렸다.


“그런데,

이미 환경 쪽에서는

시간이 없다는 판단이 내려진 상태였거든요.

기후위기, 인류세, 여섯 번째 대멸종 이야기까지

공식적으로 오르내리던 시점이었으니까요.”


나는 숨을 고르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래서 온건한 합의보다

즉시 작동하는 장치가 필요했어요.

기본소득에 공동기여를 붙인 설계는

과격한 환경단체들까지

한 번에 끌어들일 수 있었죠.”


허미래는 마지막 문장을 조금 낮은 톤으로 말했다.


“이론만 있었다면

아직도 토론 중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구를 위한 돈의 흐름이

지금 당장 만들어지는 구조였기 때문에,

시기를 앞당길 수 있었죠.”



4. 증언7. 1% 공동기여 풀이 만들어낸 생태계의 변화

— 인간의 책임을 제도화하다


“이 제도가 정착된 사회에서는
환경 보호가

더 이상
‘착한 행동’이 아닙니다.”


그녀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되었죠.”

“기업은

폐기물 부담을 줄이기 위해

포장재를 바꾸고,

생산 방식을 바꿨습니다.”

“지방정부는
해양 정화나
생태 복원을
미루는 선택지를
가질 수 없게 됐고요.”

“개인도
환경을 파괴하면 비용이 들고,
환경을 지키면
자신의 기금이 쌓인다는
단순하고 분명한 구조를
공유하게 됩니다.”


나는 말했다.


“… 결국
지구를 지키는 일이
모두의 이익이 되는 구조네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환경 문제는
도덕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니 까요.”



5. 지구는 언제까지 ‘비용 없는 배경’이었을까


허미래의 말이 끝났을 때,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동안

지구가 망가지는 이유를

의식 부족,

도덕성 결핍,

개인의 무책임으로 설명해 왔던 건 아닐까.


하지만 이 사회에서는

지구를 지키는 일이

선택도, 미덕도 아니었다.


그냥 유지 비용이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전기료를 내듯,

보험료를 내듯,

숨 쉬듯 감당해야 하는 조건.


그제야 질문이 바뀌었다.


지구를 살릴 수 있느냐가 아니라,

우리는 언제까지

아무런 비용도 치르지 않고

지구를 써도 된다고 믿어왔던 걸까.


그리고 또 하나의 질문이

조용히 따라왔다.


만약

지구를 파괴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 '착한 선택'이 아니라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기본 조건이 된다면,


인류는

얼마나 더 오래

자기 파괴를

미룰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