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아[시즌2] 2부. 한국형 기본소득의 탄생(4장)

4장. 왜 보편성이었는가 — 거주자 기준 시민권

by 밀리폭

한국이 기본소득을 설계하면서

가장 먼저 마주한 문제는 재원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받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은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공동체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존 복지 제도에서 이 질문은

늘 같은 방식으로 해결되어 왔습니다.

자격을 나누고, 조건을 붙이고, 예외를 만들고,

그 예외를 다시 관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국적, 연령, 소득, 가족 구성, 노동 상태 같은 기준들이

겹겹이 쌓여

누군가는 제도 안으로 들어오고,

누군가는 제도 밖에 남았습니다.

기본소득은

이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던지는 제도였습니다.

“누가 더 필요하냐”가 아니라,

“누가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고 있느냐”를 묻는 제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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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이 아닌, ‘함께 사는 사람’


기본소득 논의 초기에

가장 급격한 반발이 일어난 지점은

국적 기준이었습니다.

국민에게만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

세금을 낸 사람에게만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

외국인을 포함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주장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부정할 수 없는 사실도 있었습니다.

이 사회를 실제로 작동시키는 사람들 가운데

국적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사람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같은 도시에서 거주하고,

같은 물가를 감당하며,

같은 소비세를 내고,

같은 위험과 재난에 노출되는 사람들입니다.

한국형 기본소득의 초기 구상은

국적이 아니라 거주를 기준으로 하는 보편 지급이었습니다.

시민권이 아니라 생활권을 기준으로

공동체를 정의하자는 구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구상은

그대로 관철되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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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기준으로의 분기


정책 설계 과정에서

강한 정치적·사회적 반대가 제기되었습니다.

전면적인 거주자 기준 보편 지급은

당시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합의의 범위를

넘어선다는 판단이 내려졌습니다.

그 결과 한국형 기본소득은

하나의 기준을 강행하는 대신,

두 가지 기준이 나란히 작동하는 구조를 택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병존이 부차적 예외가 아니라

처음부터 동등한 원리로 설계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국적과 거주는

주종 관계가 아니라,

같은 무게의 판단 기준으로 배치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시민 기준 기본소득입니다.

국적을 기준으로 하되

추가적인 선별 조건은 두지 않는 방식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거주민 기준 기본소득입니다.

합법적 거주 외국인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습니다.

체류 자격과 거주 사실이 확인되는 사람을 대상으로,

생활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구조였습니다.

이는 타협의 결과였습니다.

당초 목표였던 전면적 거주자 기준 보편성은

후퇴했지만,

완전한 배제 역시 선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졌습니다.

한국은 이 방식으로

“국민만의 제도”와 “거주 공동체의 제도” 사이에

불완전하지만 분명한 접점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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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적 거주 외국인의 포함


거주민 기준 기본소득은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였습니다.

‘누가 우리인가’라는 질문을

제도 안에 남겼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이미 이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체류 자격, 거주 기록, 소비 기록, 노동 기록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동안은

이들을 권리의 주체로 호명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기본소득은

이 경계를 일부나마 이동시켰습니다.

관리의 대상이었던 사람들이

부분적으로나마

지급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에서

내부의 배제 논리 또한 흔들렸다는 사실입니다.

밖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 제도가 등장하자,

안에서 누군가를 낙인찍는 언어 역시

이전만큼 쉽게 작동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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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정의의 재설계


보편성은

도덕적 선언이 아니라

사회 운영 방식의 선택이었습니다.

선별은 언제나

관리 비용을 동반합니다.

행정 비용뿐 아니라,

사회적 불신이라는 비용을 발생시킵니다.

누가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묻는 순간,

누군가는 늘 의심의 대상이 됩니다.

그 의심이 반복될수록

제도는 복잡해지고,

복잡해질수록 신뢰는 약화됩니다.

한국형 기본소득은

이 악순환을 완전히 끊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다른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기여한 만큼 받는 공동체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기여로 인정하는 공동체.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같은 제도의 영향을 받으며,

같은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공동체적 관계라는 인식입니다.

보편성은

가장 쉬운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은

전면적 보편성 대신

병존과 확장이라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이 선택은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기본소득은

단순한 현금 이전 정책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를

‘같은 사회의 사람’으로 부를 것인가에 대한

선언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기본소득이 시작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한국 사회를 시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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