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업무 시작! 운전 테스트!

한국에서 차 가져오면 안될까요..

by Military Nomad

자리를 잡기도 전에, 나와 함께 넘어온 임무단장의 초소 방문 일정에 합류하게 되었다. 임무단장 동선에는 이스라엘 쪽 참모들, 그러니까 우리 연락장교들이 가급적 함께해야 했고, 갓 도착한 나도 겸사겸사 지형 정찰도 할 겸 동행하게 된 것이다.


중동이라면 뜨거운 태양과 사막을 떠올리기 쉽지만, 겨울의 골란은 정말 춥다. 헤르몬산에는 눈이 쌓여 제설 없이는 차량 이동이 어렵고, 우리 캠프 역시 고도 1,000미터가 넘는 위치에 있어 겨울이면 비도 자주 오고, 바람도 어마무시하게 분다. 초소 방문 날도 예외 없이 비바람이 몰아쳤다. 주변은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것들로 시야가 거의 없었지만, 다른 연락장교 차를 얻어 타고 무사히 돌아다녔다.


다음 일정은 피지 출신 연락장교 쿠루가 안내해 준 ‘뉴커머 지형정찰’ 코스. 쿠루는 나를 데리고 골란고원을 한 바퀴 돌았다. 이 코스는 나중에 나도 새로운 인원이 오면 똑같이 안내하고 있는 코스이다. 갈릴리 호수 좌측으로 내려갔다가 우측으로 올라오는 동선으로, 중간에 갈릴리 호수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도 있고, 이스라엘 방산기업 엘빗(Elbit)의 활주로도 스쳐 지나간다.


길가에 세워진 스파이 엘리 코헨(Eli Cohen)의 기념비도 인상적이다. 그는 시리아에 침투해 고위직까지 올라갔다가 발각되어 처형된 이스라엘 최고의 스파이로 (아마도 세계 최고급 스파이가 아닐까), 그의 이름은 지금도 이스라엘에서 자주 회자된다. (넷플릭스에 The Spy 라는 3부작 시리즈물이 있는데 재미있다. 추천!)


이 코스의 묘미는 해발 1,000미터 캠프에서 출발해 해수면보다 더 낮은 갈릴리 호수 남단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북쪽 국경을 따라 벳 샨 방향으로 이동하며 좌측에 요르단 국경을 그대로 끼고 달릴 수 있다는 데 있다. 시야만 확보된다면 정말 멋진 드라이브다. 물론 너무 구불구불해서 운전하기는 좀 힘들지만, 충분히 가볼 만한 가치가 있는 코스이다.


이렇게 골란고원 지형을 대강 익히고 나니, 그 다음으로 시급한 과제가 있었다. 바로 운전 허가 시험.

이번이 다섯 번째 파병이었지만, 사실 유엔 임무단의 공식적인 운전 허가 시험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전 레바논(동명부대)과 남수단(한빛부대) 파병 때는 부대가 본부를 대리해 자체적으로 허가를 내주는 구조였기 때문에, 수송관에게 허가만 받으면 됐다. 대부분 한국에서 가져온 오토차량이라 주행 자체도 큰 문제가 없었다.


인도-파키스탄 파병 때는 상황이 또 달랐다. 그 지역은 지형이 너무 험준해서 일반 임무단 인원에게는 아예 운전이 허가되지 않았다. 진짜 예외적인 상황, 이를테면 운전병이 죽기 직전일 경우(!)를 제외하곤 운전대는 잡을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이번, 다섯 번째 파병에서야 유엔 정식 운전 시험이라는 것을 처음 치르게 된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시리아 본부에 체류할 때 미리 시험을 치르고 이스라엘로 넘어오는 거였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걸 알려주지 않았다.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몰랐으니 물어볼 수도 없고.


나는 수동 운전 면허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실제로 수동차를 몰아본 건 거의 전무했다. 이번 파병 준비하며 군수학교 안에서 잠깐 연습해본 게 다였고, 레바논 근무 때도 한두 번이 전부였다. 그 상태로 도로주행까지 보자니, 앞이 아득했다.


다행히 우리 피지 연락장교 쿠루가 자기 차와 임무단 면허증(차량 로그인용)을 빌려주고, 직접 옆에 타서 연습을 도와줬다. 나는 슬프게도 운전한지 10년이 훨씬 넘었음에도 유튜브에서 수동 기어 변속, 후진 영상까지 찾아보며 시뮬레이션을 돌려야 했다. 진짜 기어 변속은 너무 어려웠다. 그리운 한국의 내 차.


첫 시험 때는 의외로 영내 기능 시험은 무사통과! 주차, 방향 전환 같은 항목은 감점 없이 한 번에 붙었다. 문제는 도로주행이었다. 시험관은 호주군 부사관 출신으로 유엔에 들어온 ‘토니’라는 중년의 유엔 직원이었는데, 마치 친아버지가 운전 가르쳐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듣자니 토니는 엄청 깐깐하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기어 실수에 가차 없이 감점 처리… 결국 첫 도로주행 시험 탈락. 아놔…


두번째는 그래도 곧잘 한거 같았는데,

"I don't think you're fully confident with the gear. You drive well, but I'm not sure if you are fine in Jerusalem or Tel Aviv" 또 떨어졌다. 아놔...


그나마 원래는 시험 기회가 세 번뿐인데, 토니가 은근히 봐줘서 두 번째는 연습 주행으로 쳐줬다. 웃기게도 그 두 번째 시험과 마지막 세 번째 기회는, 나와 토니가 번갈아가며 휴가를 가는 바람에 무려 두 달에 걸쳐 치르게 됐다. 그러다 결국 토니가 휴가간 사이에 시리아 본부에 있는 '마누'라는 매우 관대한 시험관이 이스라엘 캠프 쪽으로 넘어왔고, 심지어 토니랑 봤던 도로주행보다 훨씬 못했음에도 단박에 합격해서 임무단 면허증을 드디어!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시리아 도착했을 때 나를 데리고 다마스쿠스로 갔던 시리아 담당 연락장교 후임은 운전시험 떨어져서 일년 내내 다른 참모장교를 데리고서만 밖에 나올 수 있었다)


운전 허가가 없으면 내 명의로 배정된 차량을 운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은 사실상 캠프에 감금당한 셈이었다. 다행히 쿠루와 피지 부대 친구들이 이곳저곳 다닐 때마다 데리고 다녀줘서 그나마 어렵지 않게 골란이랑 예루살렘 등 면허 없이도 잘 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지금은 운전 잘한다. 기어변속도 꽤 능숙하다. (물론 예루살렘 올리브산이나 베들레헴 같은 좁고 복잡한 길은 절대 가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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