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 일 하는 사람
[오늘은 좀 무거운 주제가 될껍니다. 혹 불편하신 분들은 읽지 않으시는걸 추천합니다.]
아주 가끔, 내가 있는 골란고원으로 파병을 생각하는 후배들이 연락을 해오거나 주변에서 "거기 일은 어때?" 하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 대답은 늘 같다. “일은 어렵지 않은데 좀 민감하고 험한 일이 종종 생겨.” ‘민감한’ 이유는 이스라엘군과의 협력 때문이다. 내가 임무단에 도착한 이래 이스라엘은 하루도 전쟁을 치르지 않은 날이 없고, 그러다보니 이스라엘군 역시 예민하다. 물론 그들과의 협력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다룰 예정이다. 오늘의 주제는 ‘험한 일’에 대한 이야기다.
고등학교 시절 아주 잠시, CSI의 영향이었는지 내 장래희망은 부검관이었다. 교생선생님이랑 상담하는데 '넌 꿈이 뭐니' 했는데 '부검관이요' 했다가 교생선생님이 경악했던 기억이 있다. 수학 성적이 너무 안 좋아서 문과로 틀면서 그 꿈도 사라졌지만, 대학 때 법의학 책을 재미있게 읽기도 했다 (하필 우리학교엔 법의학 과목이 없었다 흙흙). 심지어 대학 시절, 아주 잠깐이긴 해도 엄마에게 “여성 전용 장의사를 해보면 어떨까?” 제안했다가 뚜까 맞을 뻔한 기억도 있다.
이렇듯 CSI와 같은 각종 범죄물, 보고서나 기사로 시신을 많이 접하기도 했고, 원래도 그닥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편인데, 실물은 조금 다른 문제다.
여기 골란에서 겪는 ‘험한 일’ 중 하나는, 바로 시신 인도다. 이스라엘군의 대응방식은 보통 이렇게 진행된다. 경고, 경고사격, 조준사격. 시리아 측 민간인이 경계를 넘어오면 실제로 총격이 발생한다. 그 결과로, 내가 여기 온 이후에만 두 번, 시리아 민간인 시신이 우리를 통해 이스라엘군으로부터 시리아로 인도되었다.
원래는 국제적십자사(ICRC)가 담당해야 할 일이지만, 이스라엘 측은 언제나 일부러인지 (거의 확실하게 일부러라고 본다.) 1시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연락해 온다. ICRC에 연락해도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 안 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 연락팀, 군사경찰, 군의관이 현장으로 나간다.
한국 상황에 빗대 보자면, 판문점을 통해 떠내려온 북한 주민 혹은 북한군 시신을 인도하는 느낌에 가깝다고 할까.
첫 번째는 임무단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이었다. 밤에 이스라엘군으로부터 “시신을 인도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시리아 남성이었다. 검은 바디백에 담겨 이스라엘군에게 인도받았고, 다행히 이스라엘 측이 직접 열어보는 것을 동의하지 않아서, 그대로 시리아 측에 넘겼다. (바디백 말로만 들었지 실물 처음봤다.) 바디백 위에는 또 다른 작은 바디백이 하나 더 있었는데, 신체 일부였다고 들었다. 현장에 있던 우리는 다행히 바디백 외에는 보지 않았지만, 시리아 쪽 연락장교였던 페트라는 시리아 병원까지 동행해 부검까지 함께했다고 들었다. 첫 번째 경험 이후, 나는 이런 상황이 다시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분쟁 지역에서 희망 사항은 그저 희망일 뿐이었다.
두 번째는 상황이 더 명확했다. 총격 현장에서 바로 사망한 듯 보였다. 허벅지에 총상을 입은 민간인이 담요 비슷한 것으로 대충 덮인 채 들것에 실려왔다. 비쩍 마르고 창백한 얼굴과 피로 얼룩진 담요. 그 장면은 시신 그 자체보다도, 왠지 모를 허무함이 더 크게 남았다. 함께 있던 로드리고는 "나는 보고 싶지 않다"며 멀찍이 떨어져 있었고, 나는 군의관 옆에 서서 시신을 확인한 뒤, 시리아 측에 인도했다. 고작 20대 초반으로밖에 되어 보이지 않던 그는 이스라엘군 앰뷸런스에서, 임무단 이스라엘쪽 캠프의 앰뷸런스로, 그리고 시리아 본부의 앰뷸런스에 실려서야 비로소 시리아로 돌아갈 수 있었다.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스라엘의 입장도 이해가 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 그들이 그저 호기심에 이스라엘측에 접근한 것인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것인지 아니면 양떼를 몰다가 양떼와 함께 온 것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이런 죽음은 너무 허무하다. 안타깝게도 내가 있는 일년 반 사이에 이스라엘측에 억류된 시리아 민간인 사례는 꽤 많고, 여전히 돌려보내지 못한 여러 시리아인들이 있다. (억류된 민간인 역시 이스라엘군의 조사가 끝나면 임무단을 통해 송환된다. 하지만 요즘은 그냥 현장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경우가 많다. 골란고원에 이스라엘군이 다 들어와 있어서..)
이런 일은 많지 않다. 하지만 아주 가끔,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이런 ‘현실’이 눈앞에 닥친다. 시신이든 부상자든,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옛날에 일방적으로 그어진 이른바 '국경'을 넘어온 그들의 이야기는 기록되지 않는다. 죽음도 허무하고 안타깝지만, 현장의 우리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더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