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걸 다 하는 평화유지군
우리 연락팀의 하루 대부분은 이스라엘군과 시리아군 사이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쓰인다. 각종 협정 위반 사항이나 행정적 문서, 요청 등을 완급에 따라 전달하거나 회신하는, 일종의 교환대 같은 역할이다. 실상은 거의 사무실에 앉아 왓츠앱과 아웃룩 사이에서 미친 듯이 영타를 치는 '키보드 워리어' 같은 삶이다. (요즘은 한글 타수보다 영타가 더 빠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국경개방'에 사람이 모자라면 나가서 지원해주기도 하고, 옆 집의 UNTSO 연락장교가 휴가가면 초소에 갇혀있는 옵저버들 풀어주러도 나가고, 이스라엘군에서 차량 지원 요청하면 태우러도 가고 하는데, 그중 가장 어이없고 위험했던 외부 업무가 있었으니, 바로 ‘양치기’다.
이곳 AOS (Area of Seperation) 는 우리나라 DMZ와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DMZ 처럼 협정 양 당사자들이 무장을 할 수 없는 것은 완전히 동일하다(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가장 큰 차이는, 시리아 측에는 민간인들이 AOS 안에 실제로 거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주로 농사나 목축으로 생계를 유지하는데, 문제는 이들이 기르는 양이나 염소들이 분계선을 넘어오는 것이다. 가장 사건이 자주 벌어지는 곳은 남부 지역이다. 이곳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이스라엘, 시리아, 요르단이 국경을 맞댄 삼각지대로, 여전히 ISIS 세포들의 활동이 있어서... 이스라엘과 시리아 모두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곳이기도 하다.
양(혹은 염소)들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선을 넘었다고 알아차릴 리도 없거니와, 우리 분계선처럼 여기도 역시나 분계선은 드문 드문 세워둔 Barrel 로만 구분된다. (우리나라도 나무 푯말이나 녹슬은 철제 작은 푯말 같은 걸로 구분되어 있다.) 그러니 당연히 풀뜯던 양, 염소들이 빈번히 접근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군은 이 양, 염소들이 넘어오게되면 당연히 그 양치기들도 넘어올 수 밖에 없는 구조다보니 이렇게 접근할 때마다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경고 사격이 벌어지는 일도 드물지 않고, 우리에게 요청해 순찰팀을 보내 양치기들을 돌려보내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은 이스라엘군이 넘어온 양을 아예 데리고 가버리는 바람에, 본부나 초소 주변에 성난 시리아 민간인들이 몰려드는 일도 있다. 한 번은 시리아 민간인들이 소들이 (이번엔 소다) 물을 못 마시고 있다며 항의하러 왔고, 주말 내내 이스라엘군과 실랑이 끝에 이스라엘군이 직접 소들에게 물을 주고 결국에는 소들을 풀어준 적도 있다. (진짜 주말 내내 매달렸다. 성공!!!)
이 전에는 상황이 제법 심각해져서 성난 시리아 민간인들이 이스라엘쪽 철책까지 가서 항의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중간에 끼인 우리만 겁나 바빠졌었는데, 거의 하루 내내 설득도 하고 빌기도 하고 (이놈의 일, 맨날 사과하고 부탁하는게 일이다.) 해서 간신히 돌려보내주겠다는 확답을 받았다. 이게 아마도 첫 Livestock Crossing 이었던 것 같은데, 연락장교들이 '양치기' 타이틀을 얻게 된 계기이다.
간신히 가축들을 돌려보내주겠다는 확답을 받고, 현장으로 연락장교들이 지원을 나가기로 했는데, 문제는 이스라엘군은 '분계선' 이스라엘쪽으로는 시리아 사람들의 접근을 철저하게 차단했고, 이 길 잃은 양들은 돌아갈 재간이 없었다는거.. 그리고 이스라엘 철책에서 분계선까지 이 길잃은 양들은 누가 이끌어야 한다는 건가.
여기서 근무하면서 에지간하면 방탄조끼 안입는데, 이번만큼은 어떤 일이 어떻게 생길지 장담할 수 없어서 방탄조끼까지 갖춰입고, 쿠루와 이스라엘군 연락팀과 함께 현장에 도착했다. 이스라엘군 초소를 둘러싸고 있는 양인지 염소인지 떼를 보는건 이건 또 신선한 코미디. 당연히 우리 중 누구도 이 양들을 어떻게 몰아야하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고, (다행인지, 엄청 신기하게도) 이스라엘군 초소에 근무하는 인원이 완전 전문가였다. 이스라엘군 전투복을 입고 양 위에 올라타고 휘파람을 불어가며 양떼를 모는 걸 보는건 그야말로 문화적 충격과 개그 그 사이 어딘가.
그렇게 몰아온 양떼를 철책 넘어 보내는건 슬프게도 우리의 일이 되었다. AOS 는 우리 DMZ 마냥 지뢰가 매설된 지역인데, 아무 생각없이 들어가다가 이스라엘군 연락팀이 격렬하게 뜯어말려서 나는 그 위치에서 멈췄는데, 이걸 못본 쿠루는 거의 반절 넘게까지 양을 몰고 들어갔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지만, 양이나 쿠루가 튀겨지는 건 아닌지 모두가 숨죽이고 기다렸다.
양들을 데려가기 위해 시리아인이 어쩔수 없이 접근했다가 이스라엘군에 항의 겁나 받아 귀에서 피날뻔 한건 또 다른 문제.. ㅠ.ㅠ
암튼 이렇게 무사히? 양들을 보내고 나중에 시리아 쪽 사진을 봤는데, ㅋㅋㅋㅋ 시리아쪽 우리 임무단 인원들도 양떼 몰고 돌아가는 모습. 평화유지군의 새로운 스킬 습득이었다. 타이밍 좋게도 전에 잠시 이스라엘 캠프에 머물렀던 아일랜드의 친구가 선물이라며 작은 양 인형을 보내줘서, 한참동안 '우리 양 한마리 못보냈어' 이러면서 다같이 웃던건 또다른 웃픈 이야기.
평화유지군의 새로운 스킬 습득. '양치기'는 그 누구도 예상 못 한 전개였지만, 골란고원에서는 이 또한 우리의 소중한 임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