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드가.. 아사드가 무너지다니..

의도치 않게 역사의 한복판에 서 있게 된 이야기

by Military Nomad

다시한번, 나의 첫 파병은 레바논이었지만 대부분 시리아 상황을 추적하는 업무였기에 첫 파병 이후에도 시리아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두번째 레바논 파병도 시리아 상황에 대해 추적하는 직책이었고..


시리아에 처음 들어갈 때 봤던 아사드의 홍보물과 다마스쿠스 시내의 모습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화학무기를 사용한 장본인인 아사드와, 도시를 개발하는 지도자로서의 아사드가 겹쳐졌기 때문이다. 거기에 아사드 정권의 장군과 나눴던 훈훈한 대화 역시 그 전까지 적대적이었던 아사드 정권에 대한 인식을 다소 누그러뜨리는데 한몫 했다.


나는 (국제적으로) 이스라엘에 점령하고 있는 골란고원 지역에 있는지라 임무단 본부가 있는 시리아에는 거의 갈 일이 없다. 가끔 여성관련 행사가 있거나 본부에서 필요하다고 하면 귀찮음을 무릅쓰고 잠깐 넘어갔다가 복귀하는데, 왔다 갔다 하면서 이스라엘군에 짐 검사 받고 하는 게 딱히 유쾌한 일은 아니기도 하고 임시 숙소에서 일주일 정도 지내는게 불편하기도 해서 가급적이면 안넘어가려고 한다.


하지만 작년 11월 말. 11월의 마지막 주 목요일에 시리아 본부로 넘어갔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호주 친구와 저녁을 함께 하기도 하고 금요일 밤마다 복지 차원에서 여는 본부 내 펍에 가기도 하면서 나름 시간을 잘 보내고 있었는데, 주말에 호주 친구가 다마스쿠스를 함께 가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당연히 ㅇㅋ를 하고 아침에 함께 출발했다. 거의 1년만에 돌아온 다마스쿠스는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이번엔 다마스쿠스 구시가지를 함께 돌아보고 제법 큰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 식당 한켠에 아사드 얼굴로 장식된 벽을 보면서 참 대단하다 생각하면서..


돌아오는 길에 다마스쿠스 안의 쇼핑몰에 들러 장을 보려고 했는데, 운전하던 호주 친구가 길을 잘못 들면서 시리아 현지인과 접촉사고가 났다. 주차된 차를 긁거나 셀프로 내 차를 어디 벽이나 이런데 초보때 긁어 본적은 있는데, 주행중에 부딪혀보기는 처음. 아침에 친구 차가 시동이 안걸려서 내 차로 갔는데.. ㅠ.ㅠ 결국 이 차는 두 달이 넘도록 이스라엘 쪽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사고 처리를 기다리며 다마스쿠스 시내 한복판에 꽤 오랜 시간 있었지만, 도시 분위기는 평온했다. 물론 기사에서 반군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음에도 다마스쿠스는 그대로였다.


그렇게 한주 주말을 보내고 다시 원래의 캠프로 돌아왔다. (차 없이..ㅠ.ㅠ)

외교부 주관의 행사가 있어 매우 짧은 일정으로 한국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출발 바로 전날 밤, 주둔지 주변이 매우 시끄러웠다. 헤즈볼라로부터 로켓이 날아올 때도, 이스라엘군이 시리아를 향해 공습하거나 포를 쏠 때도 이 정도로 시끄럽지는 않았다. 근거리에서 포탄 소리가 들렸고, 소화기 소리들이 쉼없이 들려왔다. 반군들이 시리아 남부에서 주도권을 잡았다는 기사가 있었고, 반군의 공세가 점점 심해진다는 소식이 있었기에 혹시나 했는데…


바로 그 다음날, 내가 한국으로 날아가고 있던 그날. 아사드 정권이 무너졌다.


1974년 이 임무단이 창설됐고, 아버지 아사드가 정권을 잡고 있을 때 만들어진 이 임무단은 아사드가 아닌 어떤 다른 세력과 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이 날을 기점으로 아사드 정권은 러시아로 망명을 떠났고, 내가 만났던 그 시리아 장군도, 임무단과 일하던 모든 시리아 정부군 장교들은 자취를 감췄다. 한동안은 모두가 멘붕 상태였다. 다마스쿠스의 정부가 운영하던 호텔은 반군과 시민들에 의해 약탈 당했고, (듣기로는 호텔에서 머무르던 유엔 직원들의 집기도 털렸다고 했다.) 시리아의 상황은 정말 예측할 수 없게 되었다.


다행히 내 비행기는 이스라엘 벤구리온 공항으로 귀국하는 일정이어서 큰 문제 없이 복귀를 했고, 외교부 행사에서 만났던 국제기구의 사람들 역시 아사드 정권의 붕괴에 꽤나 충격을 받는 모습이었다. (좋은 방향의 충격이지만, 다소 우려스러운..)


아사드 정권 붕괴 후 반년이 지난 지금은 새로 들어선 시리아 임시정부가 안정화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 중이다. 하지만 한국에도 크게 보도된 드루즈와 정부군 사이의 충돌, 빈번히 보고되고 있는 IED 공격시도, 암살과 무력충돌 등으로 서서히 불안정성이 다시 높아지고 있는 느낌이다. 시리아의 미래는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


12년 전 레바논을 떠나오던 나의 꿈 중에 하나는 시리아로 다시 파병을 나오는 것이었다. 10여년만에 시리아로 돌아와 아사드 정권의 붕괴를 직접 겪고, 우리나라와의 관계가 정상화 된 지금 내 다음 목표는 시리아 우리 대사관에 무관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50년간 지속된 아사드 체제의 종료를 목격한 증인으로서, 그리고 평화유지군으로서 시리아의 새로운 출발을 지켜보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시리아가 하루빨리 안정되고 무고한 희생이 없이 평화롭게 통합되기를.. 빠른 시간 내 내가 다시 시리아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본다.


덧. 과거 아사드 정부 시절 시리아 지폐 가운데 2000 파운드짜리에 아사드의 얼굴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 지폐를 쓰고 있는지 환전을 안해봐서 모르겠는데, 이제는 굉장히 좋은 기념품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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