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여기가 진짜 시리아구나…

베이루트에서 다마스쿠스까지

by Military Nomad

2023년 11월, 나는 마침내 출국 비행기에 올랐다.

베이루트 라픽 하리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처음 마주한 건, 레바논 이미그레이션의 낯선 분위기였다. 예전의 유니필에게는 친절했던 것과는 달리 운도프를 대하는 공항 직원들의 눈빛이 차가웠고, 그들의 말투는 마치 외부인을 경계하는 듯했다. 그 때 당시에는 여전히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의 근거지에 쉼 없이 포탄을 퍼붓던 때였음에도 공항 밖의 사람들은 여전히 밝고 긍정적인 레바논 사람들 그대로였다. 반가운 손님이라도 오는지 밴드와 함께 노래하고 춤추던..


또 한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공항 주변을 순찰하던 레바논군의 모습이었다. 언제 이렇게 발전했지? 미군 스타일의 깔끔한 전투복에, 말끔한 장비. 몇 년 전 UNIFIL 시절, 어딘가 어수선하고 장비도 제각각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많이 컸구나.’


그런데 첫 위기는 의외의 데서 왔다. 레바논에서는 내 휴대폰 로밍이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차량이 나를 데리러 왔는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공항 안에서만 와이파이가 잡히는 상황. 나는 공항 안팎을 들락날락하며, 인사참모와 차량 위치를 확인하는 일종의 술래잡기를 벌였다.

결국 드디어! 임무단 차량을 찾았다. 그런데 세상에나. 마치 베트남 전쟁에서 써먹었을 법한 오래된 유엔 미니버스. 유엔 특유의 흰색 차량이다보니, 세월의 흔적을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녹슬고 낡은 모습에, ‘이걸 타고 정말 시리아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차를 운전하던 인도군 병사들은 꽤 친절했고, 우선 베이루트 시내의 호텔로 이동했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우리는 곧바로 시리아로 출발했다.


베이루트 시내는 여전히 혼돈의 도시였다. 교차로 하나에서 수십 대의 차량이 서로 경적을 울리며 꼼짝도 못한 채 꽤 오랜 시간을 보낸 끝에야 간신히 빠져나왔다. 이 익숙하고도 혼란스러운 풍경, 그 속에서 나는 과거 UNIFIL 시절을 떠올렸다. 티르 시내에서 2차선 도로를 6차선으로, 때로는 심지어 8차선까지.. 만들던 그야말로 중동의 기적!!!

그리고 곧, 전혀 가본 적 없는 길을 따라 새로운 국경으로 향했다. 시리아와 레바논 사이에는 여러 개의 국경이 있지만, 우리는 다마스쿠스와 가까운 마스나(Masnaa) 국경을 통과했다. 이 국경을 지나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어쩌면 지난 10년간, 혹은 그보다 더 오래 전 이후 처음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국군으로서는 더욱더 이례적인 순간이었다.


레바논 쪽 국경은 분주했다. 차량과 사람들이 얽히고설켜 있었지만, 나는 차에서 내릴 필요조차 없었다. 인도군 운전병이 내 여권을 가져가더니, 모든 절차를 대신 마치고 돌아왔다. ‘어? 편하네?’

레바논 국경을 지나자마자 가장 먼저 마주한 건 거대한 아사드 대통령의 사진이었다. ‘북한인가…?’ 싶은 기시감. 독재자들은 왜 이렇게 자기 얼굴을 여기저기 붙이기를 좋아할까. 자기애의 끝판왕들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의외였던 건 시리아 측 국경이 레바논보다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는 점이다. 면세점도 있었고, 사람들이 비교적 차분했다. (나중에 들으니 UNDOF 임무단 시리아 본부 인원들은 이 면세점에서 술이나 생필품을 자주 사 온다고 한다.) 나는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후회했지만, 처음이라 조심스러웠고 괜히 문제가 생길까 싶어 아주 소심하게 한두장 찍은게 다였다.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협조가 잘 되어 있었기 때문인지 나는 시리아 측 출입국 직원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운전병의 도움으로 무사히 입국 절차를 마칠 수 있었다.


드디어 시리아 땅을 밟았다. 목적지는 수도 다마스쿠스.

가는 길 내내 양옆으로는 빛바랜 아사드 부자의 선전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나마 그래도 북한보다는 낫구나. 북한이었음 선전물 관리하는 사람 어디 수용소 끌려갔을텐데.. ) 그 아래에는 반쯤 무너진 건물들, 총탄과 포격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황토색 흙빛 거리.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은 그 길에서, 나는 비로소 실감했다.

‘그래, 여기가 진짜 시리아구나. 드디어 시리아에 왔다’


그 폐허 속에서도 새로운 건물이 올라가고 있었다.

‘이 나라에도 일상이 있고, 누군가는 살아가고 있구나.’

그때 깨달았다. 우리가 외부에서 막연히 상상하는 ‘망가진 국가’라는 이미지는 그저 단편일 뿐이라는 것을.


베이루트에 도착해 잠깐 스쳐간 후회, ‘내가 또 무슨 짓을 한 거지’라는 생각은 어느새 ‘그래, 이 현장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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