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도착, 허나 여전히 뜨내기

내 몸 하나 뉘일 곳은 어디

by Military Nomad

저녁 늦게서야, 우리는 다마스쿠스에서 차로 약 40분 거리의 임무단 본부에 도착했다.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게 될 체코 출신의 페트라가 나를 반갑게 맞이하며 임시 숙소와 캠프를 안내해주었다.


임시 숙소는 생각보다 훨씬 쾌적했다. 예전 남수단에서 겪었던 열악한 숙소에 비하면 거의 5성급 호텔 수준. 방 안에 샤워실과 화장실이 갖춰진 ‘초고급 숙소’였다. 간단하게 짐을 풀고 페트라를 따라 캠프를 한바퀴 도는데, '루프탑'이 있는걸 아냐며 (그걸 내가 어찌? 나 이제 왔는데???) 한 건물로 안내했다. IT 계통 사무실이라고 설명해줬는데 한편에 원형계단을 타고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는 구조였고, 이미 서너명이 맥주 한잔씩 하고 있었다. 뷰는 헤르몬산 뷰~ 레바논에서 그 반대편을 본 적이 있었는데, 이번엔 시리아에 와서 그 건너편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뭔가 묘했다. 이제 막 도착한 뉴커머한테 건네 준 기네스 한병은 덤.


다음날부터는 바로 임무단의 인프로세싱이 시작됐다. 도착과 동시에 들은 충격적인 소식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인해 이스라엘 측으로 넘어가는 길이 막혀 있다는 것이었다. (본부는 시리아에 있지만 이스라엘군을 담당하는 연락장교들은 이스라엘쪽 골란으로 넘어가서 생활한다.) 언제 '국경개방'이 있을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고...

(‘국경 개방’이라는 표현을 쓰긴 하지만, 사실 국제적으로는 그 지역을 엄밀히 ‘국경’이라 부르기 어렵다. 이 부분은 나중에 한 번 정리해서 따로 이야기해 보려 한다.)

누군가는 "적어도 한 달은 걸릴 거야"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일단 기다려보자"며 확신 없는 위로를 건넸다. 원래도 뜨내기 같은 삶이었지만, 여기서도 이도 저도 안 되는 채로 떠나지 못한 생활을 시작하게 될 줄이야.


인프로세싱은 본부에 각종 서류—항공권, 신분 확인 서류 등—을 제출하고, MSA(Mission Subsistence Allowance)라고 불리는 생활비를 수령받기 위한 계좌를 등록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작은 해프닝 하나.

임무단 인사부서 직원이 나를 북한 국적으로 등록해버린 것이다. 처음 파견된 한국군이다 보니 시스템상 오류였겠지만, 나중에 정중히 "저 북한 사람 아니에요, 큰일나요! 대한민국으로 정정 부탁드립니다" 하고 고쳤던 일은 지금도 유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임무단에서 내가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예전 준비 과정에서 큰 도움을 주었던 아일랜드 친구들이 마치 나의 시터처럼 챙겨주었다. 뭐 필요한 건 없는지 묻고, 주말에 별 계획 없으면 함께 다마스쿠스를 나가자고 제안해주고.

그 덕분에 도착 직후 주말, 다마스쿠스를 처음으로 제대로 경험할 수 있었다.

아일랜드 출신의 새로 온 참모 장교 한 명, 먼저 와 있던 두 명, 그리고 나까지 네 명이 함께 다마스쿠스 시내로 나갔다. 처음으로 찾은 곳은 다마스쿠스에 위치한 2차 세계대전 참전 묘지.

무슬림, 크리스천, 유대인 등 다양한 종교의 병사들이 함께 묻혀 있는 이국적인 공간이었다. 이집트 출신 병사도 있었고, 각국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시간의 무게를 안고 서 있었다.


이후에는 다마스쿠스 시내의 쇼핑몰에 들러 장도 봤다. 내전 중이라 시내가 모두 폐허일 줄 알았는데, 큰 호텔도 있었고, 우리나라만큼은 아니지만 꽤 규모 있는 마트도 입점해 있었다. 그 중 하나인 포시즌스 호텔은 외관이 제법 그럴듯했는데, 나중에 듣자니 실제 포시즌스 계열은 철수했고, 지금은 이름만 남아 있는 상태라고 한다.


가는 길에는 식용유를 덜어 팔거나 작은 물품을 거래하는 노점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대부분은 레바논이나 요르단에서 밀수된 물품들이라고 했다. 유엔 소속인 우리는 그런 점포를 이용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고, 환전 역시 허용된 호텔 환전소에서만 환전할 수 있다.

호텔 환전소에서 50달러 짜리 하나를 내밀었는데, 지폐가 다발로 내 손에 들어왔다. 왜 모두가 작은 손가방 같은 걸 들고 다니는지 그제야 이해됐다. 그때 당시 환율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 기준으로 보면 50달러면 약 65만 시리아 파운드. 5000파운드 지폐로만 받아도 130장이다.

포시즌스 호텔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었는데, 한 사람당 3~5만 원 정도 가격이 나왔다. 지폐를 일일이 세지 않고 다발 채로 올려두고 나오자니 무슨 재벌이 된 느낌.


다들 여기서 길게는 한 달 넘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고, 마침 12월 초에는 일주일간의 전입 교육도 예정되어 있었기에, 다마스쿠스 주류 판매점에서 시리아 맥주 한 박스를 사서 함께 캠프로 복귀했다.


오며 가며 길에 본 시리아군 초소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합판으로 대충 지은 초소에, 모닥불로 물을 끓이고, 낡은 전투복을 걸치고 있는 군인들. 불과 며칠 전 베이루트 공항에서 본 레바논군의 모습과 비교하면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사실 시리아는 레바논보다 훨씬 강한 국가였지만, 내전과 국제 제재의 흔적이 이토록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주말이 끝나갈 무렵, 시리아 담당 연락장교가 다가와 말했다.

"시리아측 연락단장(준장)이 너 한번 보재"

그렇게, 나는 다시 다마스쿠스로 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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