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Sweet Home~
자, 드디어 간다.
한 달 넘게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일찍 이스라엘 쪽 골란고원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시리아 담당 연락장교의 차를 타고 짐을 싣고 본부에서 출발해 시리아 측이 담당하는 검문소를 통과하고, 채 1킬로미터도 되지 않는 버퍼존을 지나 이스라엘 측 검문소에 도착했다.
우리나라 DMZ와는 달리, 시리아 쪽에는 사람들이 그대로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었고, 여전히 1974년 전쟁의 흔적과 내전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이스라엘의 만행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재건하지 않고 있다는 말도 있었지만, 진실 여부는 알 수 없었다.
이스라엘은 이 검문소 통과를 ‘국경 통과’로 보기 때문에, 유효한 비자와 여권 없이는 통과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이스라엘 담당 연락장교였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허용된 경우였다. (한국군 첫 파병이라 기존 사례가 없다며 이스라엘 대사관에서는 비자 발급이 어렵다고 했기에 도착 비자를 받는 것으로 계획하고 입국했다. 다만 이곳이 정상적인 국경이 아니다보니 이미그레이션이 오지 않기때문에 내 입국이 이스라엘에 등록은 되지만 일반적인 Entry Permit 티켓이 발행되지는 않는다.) 지금은 비자나 여권 유효기간이 지난 임무단 인원들은 절대 통과할 수 없다. (아! 임무단장? 정도면 가능)
임무단장은 VIP라 짐 검사 없이 통과했지만, 나는 짐 하나하나 검사를 받았다. 상황이 안 좋았던 시기라 임무단장도 차량 이동이 불가능한 상태였고, 나 역시 캐리어 두 개를 끌고 백팩을 메고 궁시렁거리며 걸었다. 그런데 뒤에서 임무단장도 같은 자세로 조용히 따라오고 계신 걸 보고는, 도저히 불만을 말할 수 없었다. (참고로 임무단장님은 네팔 출신 소장이었고, 진급해 중장으로 귀국하신 분. 정말 친절하고 차분하신 분이셨다.)
마중 나온 연락팀 인원들이 캐리어를 들어주고, 임무단 차량을 타고 (한 100-200미터 떨어져 있다) 드디어 나의 일 년짜리 집, Camp Ziouani에 입성했다! 이미 오기 전부터 도와준 친구들이라 내적 친밀감은 충분했다. 나와 함께 일할 네 명의 팀원들은 우루과이의 Senior Liaison Officer 로드리고, 함께 이스라엘군을 담당하는 피지의 쿠루, ‘국경 개방’을 전담하는 아르헨티나의 호아킨, 그리고 피지 부대에서 지원 파견된 필로였다.
시리아 본부는 수많은 인원으로 복작거렸지만, 이곳은 넓은 캠프에 몇 안 되는 사람들만 있는 한산한 곳이었다. 전에 레바논에서 같이 근무했던 아일랜드 친구가 “고스트타운 같다, 너무 지루하다“고 표현했을 만큼, 밤이 되면 정말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정적이 감돌았다. 시리아 본부가 다양한 국가의 인원들로 복작거리고 거의 매일밤, 특히 주말에는 시끌시끌한 분위기라면 여기는 한결같이 고요~ 하다. 예전에 시리아 내전이 한창일 때는 시리아 본부 인원 전원이 이곳으로 철수해 한동안 지낸 적도 있었다고 들었고, 지금도 그때 당시 시리아 사람들이 대피했을때 쓰다가 남기고 간 물건들이 건물 하나에 가득 차 있다.
이스라엘 쪽 캠프에는 피지 부대, 우리 연락팀, 인도 부대 헌병 소대, 네팔 부대 연락팀, 소수의 민간인 직원들 정도가 근무하고 있었는데, 전부 합쳐도 약 150명 남짓. 그 적은 사람들이 이 넓은 캠프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숙소는 깨끗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고(이걸 쓰는 지금 좀 찔린다. 지금 엄청 지저분...), 시리아에서 썼던 숙소에 비하면 작고 화장실과 욕실을 공유해야 하는 구조긴 하지만 그래도 해도 잘 들어오고 따뜻해보였다. 같은 숙소 건물에는 우리 연락팀 장교들과 인도부대 장교 - 군의관이랑 재정장교 - 들이 함께 사는 구조였다. 방이 한 열두개쯤 있나.. 그때 당시는 인도 군의관과 재정장교는 모두 여군들이었고, (지금은 다 남군) 모두 친절하고 프렌들리 했다. 큰 캠프의 적은 인원들은 작은 캠프의 많은 인원들보다 훨씬 가족적이었고, 소셜라이징이 없는 심심한 캠프였지만 벌써부터 이 캠프가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