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바쁜 N잡러 엄마

점쟁이,탐정,삐에로 그리고

by 이꺽정


예민함과 까칠함으로 완전 무장을 하고 있었던 청소년기 시절,

껍질을 꽉 다물고 절대로 열지 않는 조개처럼 입을 꾹 닫고, 엄마가 툭툭 건드리기만 해도 선인장 혹은 고슴도치처럼 잔뜩 가시를 세웠다. 내가 말한 적이 없으니까, 엄마가 내 맘을 알 수 있을 리 없는데도 엄마가 내 맘을 몰라준다는 사실이 괜히 서운하고 서러워서 괜히 엄마에게 더 툴툴거렸다.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기 전, 늘 반복되는 한 마디

ㅡ 엄마는 내 맘도 몰라주고!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다시 만난다면, 꿀밤을 때려주고 싶다.

ㅡ 말을 해! 넌 말할 수 있잖아



아직 말을 할 수 없는 아기와 함께 한다는 건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특히, 모든 불편함을 울음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울음의 원인을 빨리 파악하고 해결해 주는 게 엄마의 미션인데, 아기 울음의 이유는 100개쯤 되는 것 같고, 특별한 이유가 없이 울 때도 있어서 더 어렵다.

때로는 점쟁이가 된 것 마냥 한 번에 울음의 이유를 맞출 때도 있다. 남편이 우는 아기를 달래느라 쩔쩔 매고 있을 때 내가 용한 점쟁이 마냥 울음을 그치게 한 적도 더러 있었다. 이렇게 한 번에 이유를 알고 해결하고 나면 어쩐지 육아 레벨업을 한 것 같아서 뿌듯해진다.

점쟁이 엄마가 실패하면 탐정 엄마가 등장한다. 아기가 우는 이유의 단서를 부지런히 모은다. 기저귀가 뚱뚱해진걸 보니 오줌을 많이 쌌군, 축축해서 우는 게 분명해! 라거나, 지금 마지막 맘마를 먹은 지 3시간 42분이 경과했군, 크게 우는 걸 보니 넌 지금 배가 고파! 라거나, 돋보기만 안 들었지 누구보다 열심히 아기를 관찰하면서 뭐 때문에 우는지 찾느라 분주하다. 물론, 탐정이 허탕을 치는 날도 많다.

탐정 엄마도 그 이유를 찾지 못하면 삐에로 엄마의 차례다. 아기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서 열심히 인형극도 해보고, 책도 읽어주고, 노래하며 춤추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 되어버렸다. 조금 더 있으면 외발 자전거를 타며 저글링도 하게 되려나? 정신이 팔려 잠깐 눈물이 쏙 들어갔던 아기는 이내 다시 울음을 터뜨린다.

그러면 다시 아기의 울음소리에 쩔쩔매는 엄마가 나타난다. 엄마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그 다름을 안다고 하던데, 나는 울음소리를 들어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쩔쩔매는 엄마는 대개 아기를 안고 어르고, 달래고, 이따금씩은 너무 막막해서 같이 울 때도 있다. 내가 빨리 왜 우는지 알아야, 아기가 울음을 그칠 텐데 엄마가 빨리 알아내지 못해서 얼굴이 벌게지도록 우는 아기가 안쓰럽고 미안해서 아기를 부둥켜안고 우는 때도 있었다.





점점 커지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나를 채근하는 것 같기도 했다.

ㅡ엄마는 내 맘도 몰라주고! 엄마는 내 맘도 몰라주고!

점쟁이가 되었다가, 탐정이 되었다가, 삐에로까지 되었다가, 오늘도 바쁜 N잡러 엄마는 오직 우리 아기만을 위한 요리사도 되었다가, 청소부도 되었다가, 침대도 되었다가 사실은 직업이 열댓 개쯤 더 있다.

오늘도 한 마리의 익룡이 되어 울고 있는 아기를 바라보며, 점쟁이 엄마라면 조금 더 그 적중률이 높아지기를, 탐정 엄마라면 조금 더 날카롭게 단서를 찾아내기를, 삐에로 엄마라면 좀 더 화려한 기술을 연마하기를 그리고 쩔쩔매는 엄마라면 조금 더 의연하기를 응원해 본다.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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