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그랬을까

그때의 엄마를 들여다보는 일

by 이꺽정


아기가 처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날, 우리 엄마와 아빠는 우리 집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 병원도, 조리원도, 산모 면회는 물론 아기 면회도 안되어서 세상에 태어나고 3주 동안은 사진으로, 영상으로, 영상통화로 이렇게 작고 소중한 존재가 진짜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바쁘게 전해야 했다. 아기를 바로 앞에 두고 바라보고 있는 나도 실감이 나지 않는데, 화면으로 보고 있는 가족들은 실감이 날까, 싶었다.


아기랑 만나기 위해서 예방접종까지 진즉 맞고, 집에 도착해서는 옷도 갈아입고 기다리고 있었던 엄마아빠는 현관문이 열림과 동시에 아기가 놀랄세라 작게 이름을 부르며 겉싸개에 꽁꽁 싸인 아기에게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거의 몇십 년 만에 이렇게 작은 아기를 안아보는 것 같은 엄마와 아빠는 사랑과 기특함이 가득 담긴 눈으로 아기를 바라봤다. 할머니 품이 포근한 걸까, 편히 안겨서 아기는 깨지도 않고 쿨쿨 잤다. 엄마는 엉덩이를 토닥이기도 하고, 거실을 살금살금 돌아다니며 자장가도 불러주었다. 아마 내가 아기였을 때 엄마가 내 엉덩이도 저렇게 다정하게 토닥여주고, 자장가도 불러주었겠지. 잠시 엄마와 나의 옛날을 엿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ㅡ 많이 먹어. 엄마가 잘 챙겨 먹어야 해

엄마는 집에 오는 것만 해도 바빴을 텐데, 어느새 미역국까지 한솥 끓여두었다. 아직 아기와 집에 있는 게 어색하게 느껴져서 밥을 먹으면서도 괜히 흘깃흘깃 아기를 보게 되고, 말소리를 편히 내는 것도 어려웠다. 우리 집에 아기가 있다니! 내가 낳은 아기를 우리 엄마가 안고 있다니!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풍경에 또 한 번 신기했다.



엄마는 그 후로도 틈만 나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우리 집에 왔다. 아기가 보고 싶어서 온다고 했지만, 내가 걱정되어서 오는 게 분명했다. 아기를 보는 시간보다 오가는 길이 더 긴데도, 집에 와서 아기랑도 시간을 보내고 내가 먹을 밥과 반찬이 있는지 확인하고, 없으면 바로 두 팔을 걷어붙였다.

내가 아기를 재우려고 방안에 불을 꺼두고 어르고 있었는데, 아기가 잠들었는지 문틈으로 엄마가 슬며시 보는 게 느껴졌다. 여전히 꼬물거리고 자지 않는 아기, 조금 더 심기가 불편해지면 목청 높여 울 게 분명했다.

ㅡ깜깜한 방에 아기 안고 앉아있지 마
ㅡ재워야 하는데 불을 꺼둬야지 어떻게 해

겨우 재운 아기를 침대에 눕혀 놓고 나온 나에게 엄마가 말했다. 걱정이 묻어나는 엄마의 말에 퉁명스럽게 대답했지만, 엄마도 방 안에 오도카니 앉아있는 내 모습, 지친 내 어깨를 보고 혹시 힘들었던 엄마의 어느 때를 떠올리게 된 걸까 궁금해졌다. 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엄마의 그때를 가늠하고, 엄마는 내 모습을 보며 엄마의 그때를 떠올리나 보다. 엄마만이 겪는 행복, 슬픔, 걱정, 고단함, 막막함 그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엄마와 나는 세월을 거슬러 공유하게 되었다. 나중에 엄마가 되어보면 안다고 말하던 엄마의 말의 뜻을 이제 야금야금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엄마한테 눈물나게 미안해지고, 사무치게 고마워지는 날도 오겠지.

ㅡ 금방 지나갈 거야.


잠도 안 자고 울어대는 아기 때문에 힘들다고 엄마에게 툴툴거리면 엄마는 늘 한결같이 말한다. 엄마의 초보 엄마시절도 금방 지나갔을까, 나도 이 시기가 훌쩍 지나고 사랑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세상에 없던 작은 존재를 바라보게 되는 날이 올까, 그때의 나는 지금 엄마처럼 행복해 보이는 표정으로 잔뜩 웃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아기의 지금을 놓칠까 봐 힘들어도 행복한 오늘에 집중하기로 해본다.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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