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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꺽정 Mar 05. 2021

충실히 계절을 보내는 방법

계절메뉴가 주는 즐거움



오늘은 경칩이다. 개구리가 잠에서 깨는 날, 깊고 길었던 겨울잠에서 깨어나 콩닥콩닥 봄이 뛰기 시작하는 날,


날씨가 워낙 변덕스러워서 여전히 꽤 두꺼운 코트를 벗지 못했지만, 낮에는 봄의 햇살이 느껴져서 점심을 먹으러 회사 밖을 나가서 걷는 잠깐의 시간이 특별한 산책처럼 즐거웠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사계절이 점점 흐려지고, 여름엔 엄청나게 덥고 겨울에는 엄청나게 눈이 많이 오는 극단적인 시대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계절만이 주는 특별함만큼은 여전하다.



회사 앞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는 계절을 느낄 수 있다. 여름이 되면 꽁꽁 얼린 조각 수박을 돌돌 갈아 만들어주는 시원한 수박빙수 메뉴가 있다. 달달하고 시원한 수박빙수를 먹으면 갈린 수박이 담겨있는 그 작은 컵 하나가 그렇게 소중하다. 비록 그 빙수를 갈아주시는 사장님은 땀을 흘리고 계실 것 같기도 하지만,



여름이 가고 가을의 초입에는 푸릇푸릇 작고 귀여운 풋귤청이 병마다 가득 차있다. 상큼 쌉쌀한 풋귤 에이드의 맛이란! 올해 가을에도 마지막 풋귤 에이드의 날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가을이 가고, 겨울이 조금 무르익으면 딸기청이 온다! 수제 딸기청이 듬뿍 들어있는 딸기우유는 잘 저어서 드시라는 사장님의 당부에 열심히 휘휘 저어서 마시게 된다.


그 작은 카페에서 만드는 계절메뉴가 팍팍한 회사생활에 작은 즐거움이 된다. 잠시 여행을 떠났다 돌아온 반가운 친구처럼, 어 왔어?라는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평소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줄곧 마셔대는 나도 그 계절에 꼭! 한 번은 마시곤 한다.


이제 회사를 다닌 지 꽉 채운 4년이 넘어가니,

나는 적어도 4번의 수박빙수와, 4번의 청귤 에이드, 그리고 4번의 딸기우유를 만난 셈이다.


계절메뉴를 다루는 카페가 가까이 있다는 게 이렇게나 행복하다.



계절을 시작하는 의식처럼 꼭 한 번은 먹어주는 메뉴가 있다.


봄에는 엄마가 만들어준 봄동 겉절이를 꼭 먹고 싶다. 마트에 가면 매대에 턱턱 놓여있는 봄동을 굳이 굳이 사다가 엄마에게 겉절이를 만들어달라고 조른다. 봄동 겉절이에 흰밥만 먹어도 그렇게나 달고 맛있다.



여름에는 진한 콩국수를 먹는다. 예전에는 왜 먹는지 이해가 도통 가지 않는 음식 중 하나가 콩국수였는데, 이제는 뙤약볕 아래 긴 줄을 서서라도 먹는다. 시원하고 진한 콩국을 숟가락으로 떠먹으면 기운이 차오르는 것 같다.



가을이 시작되면 대하를 먹으러 간다. 예전에 알게 된 대하구이를 먹으면 소금 한 자루를 주는 어쩐지 무서운 대하 가게! 그 소금은 아무 데도 쓰지 못하고 싱크대 아래에 한 자루 두 자루 쌓여가지만, 대하구이를 잔뜩 먹고, 칼국수까지 양껏 먹고 나면 그제야 비로소 가을이다.



겨울에는 뭐니 뭐니 해도 붕어빵! 겨울에 처음 먹는 붕어빵은 나에게는 꽤 큰 의미라, 매 해 겨울 처음 붕어빵을 먹을 때마다 올 겨울의 첫 붕어빵이라며 호들갑을 떨곤 한다. 평소에는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도 않으면서, 붕어빵의 계절이 오면 모두가 으레 그렇듯 삼천 원쯤 가슴속에 품고 다닌다.


날씨의 변화, 풍경의 변화, 옷차림의 변화.


계절을 느낄 수 있는 변화들은 우리 일상 속 곳곳에서 찾을 수 있지만, 나는 그 계절에 나에게 가장 특별한 음식을 찾아서 식탁의 변화를 열심히 도모하고 있다.


계절마다 꼭 먹어야 하는 메뉴가 있다는 건 꽤 멋진 일이다. 그 계절에 그 음식을 먹었다는 사실만으로 다른 모든 것은 차치하고, 그 해 그 계절은 충만하게 보냈다는 뿌듯함이 뱃속에서 퐁퐁 샘솟는다.


이제 봄이니까, 봄동이 있나 매섭게 찾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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