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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꺽정 Oct 13. 2020

자매의 명절증후군

판검사와 탤런트의 늪


마음이 지금보다 어리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섬세하고 예민한 사춘기 소녀 시절에는 3살이나 터울이 진 자매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마주 보면 싸우기 바빴다.


내가 중학생일 무렵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의 관계는 거의 전쟁을 방불케 했고 그 결말은 항상 내가 화가 나서 울거나, 동생이 엄마에게 혼나고 서운한 마음에 우는 것으로 끝나곤 했다.

꼬꼬마 시절 끈끈하고 애틋한 자매의 우애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보니, 우리는 그때 서로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를 마음 한 켠에 꽁꽁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묘한 경쟁심과 시기심을 가지고 있던 영역은 꽤 달랐고, 그건 모두 나쁜 어른들 때문이었다.

추석이나 설날, 일 년에 몇 번 친척들과 만나는 민족 대명절에는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반가운 가족들도 만나지만 대부분은 공감하는 스트레스가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취업을 앞둔 취준생에게 "그래, 취업은 언제 할 거니?"라는 류의 질문이랄까. 그리고 요즘의 나는 "그래, 결혼은 언제 할 거니?"라는 새로운 레퍼토리의 질문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 시절,  어린 동생과 나에게는 항상 다른 질문이 돌아오곤 했다.

동생을 본 어른들은

"잘 지냈어? 아이고, 여전히 예쁘네~"라고 말했고,


그 옆에 서있는 나에게는

"여전히 공부 잘하고?"라고 물었다.

나에게는 예쁘다고 하지 않았고, 동생에게는 공부를 잘하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리고 그 허리가 끊어진 듯한 말이 나에게도, 동생에게도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나는 어린 시절에 모든 것에 열심인 타의 모범이 되는 청소년이었는데(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왠지 공부를 열심히 할 것 같은 안경잡이 큰손녀에게 할아버지는 "우리 큰손녀, 우리 큰손녀"하시며 판검사가 되라고 하셨고,
동생은 할아버지가 언니만 좋아한다며, 자기에게는 왜 판검사 되라고 하지 않냐며 툴툴거렸다.

이에 반해, 할머니는 동생을 보면 세상 예쁘다고, 탤런트가 따로 없다며 하셨다. 그리고 나는 티는 결코 내지 않는 의연한 언니였지만, 속으로는 조금 샘이 났다.

모두 우리를 사랑해서 건네셨던 다정한 말이라는 건 한시도 의심한 적이 없지만,
마음이 지금보다 작았던 어린 시절에는 그게 마음이 아릿할 만큼의 속상함이기도 했다.



나는 판검사가 되지 못했고, 세상에 내 동생보다 예쁜 탤런트들은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시샘은 서로를 딱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그래도 내 동생, 우리 언니가 최고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변질되었다.

이제 나도, 동생도 오랜만에 만난 친척동생에게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라고 묻는 눈치 없는 어른이 되었고,

친척동생은 조금 의견이 다를 수도 있지만,

마음도 꽤 함께 자라서 이런 어른스러운 얘기를 나누곤 한다.

"너는 언니한테 고마운 줄 알아라, 언니가 널 위해서 엄마 뱃속에 예쁜 유전자를 두고 나온 거야"
"첫째라고 욕심껏 다 주워가 놓고 생색내냐?"

아무래도 엄마 뱃속에 동생을 향한 다정함이라거나,
언니를 향한 존경심 같은 건 두고 나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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