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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꺽정 Mar 11. 2021

첫 해외출장의 추억 : 홍콩 (1)

화장실에 왜 문이 없어요?




입사하고 2년쯤 되었을 무렵, 처음으로 해외출장을 가게 되었다. 그것도 무려 홍콩으로! 드디어 커리어 우먼으로의 해외출장 퀘스트를 깨는 것인가 맘이 설렜다.


홍콩에서 열리는 큰 컨벤션의 주최 측의 초청을 받아서 가게 되어 경비도 일정 부분 아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제품들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날이 갈수록 마음이 부풀었다.


물론, 우육탕면이랑 딤섬이랑 에그타르트랑 기타 등등도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처음 가는 해외출장이 마냥 매끄러웠던 건 아니다. 어찌나 우여곡절이 많았는지 여전히 생생하다.




출장을 가는 인원은 나와 옆 팀 대리님까지 단 둘 뿐이었다.


잘 알지는 못하는 분이었지만 그래도 마냥 어려워 보이는 분은 아니라서 마음이 한결 놓였다. 해외출장에 상사와 함께 가서 수행을 하느라 잔뜩 고생했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왕왕 들었기 때문에 나도 슬쩍 걱정이 되었었지만, 출장준비를 하면서 조금씩 친해지며 그런 걱정은 싹 사라졌다.


바이어 초청에 대한 신청 폼을 작성하여 제출하고, 항공권을 예약하고, 주최 측에서 예약이 가능한 호텔 목록을 보내주어 대리님과 회의실에 나란히 앉아 검색하기 시작했다.


어쩐지 엄청난 이름의 호텔들이 몇 군데 있어서 신이 났는데, 우리가 늦게 합류하게 된 바람에 대부분 예약이 마감인 곳이 많았다. 결국에 남은 곳은 대여섯 군데. 문제는 호텔의 상세 안내였다.


"대리님. 여기는 화장실이 뚫려있어요!"

"여기는 화장실이 투명해요..!"


찾아보는 호텔마다 화장실의 문이 없이 뚫려있거나, 아니면 마치 공중전화 부스처럼 투명한 공간분할이 고작이었다. 나중에 이때의 황당함을 이야기하니 홍콩에는 원래 그런 호텔이 많고, 아파트도 그런 곳이 더러 있다고 홍콩에서 회사를 다니는 친구가 있는 선배가 이야기해주었다.


혼자 가는 출장이라면 화장실이 뚫려 있으면 동선의 편리함을 생각하는 호텔이라며 흡족했을 수도 있고, 투명 칸막이 화장실이 색다른 경험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회사를 다니며 요 며칠 바짝 이야기해본 게 전부인 아직은 수줍고 어색한 상사와 투명 화장실은 너무 큰 도전이었다.


어쩌면 한방에 막역한 사이가 될 수 있는 신이 내린 기회였지만, 결코 그 기회를 잡고 싶은 마음은 티끌만큼도 없었던 우리 둘은 남은 두어 군데에 희망을 걸었다.


"여기는 문이 있어요!"

"그럼 거기로 해요!!"



그래서 우리는 역에서도 엄~~ 청 멀고, 버스를 타러 가기 위해서는 지하도를 4개쯤은 지나야 하는, 그렇지만 문이 있는 화장실을 가진 최고의 호텔을 예약했다.


한마음 한뜻으로 호텔 예약을 마치고 나니, 어쩐지 대리님과 환상의 출장 콤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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