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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꺽정 Mar 12. 2021

첫 해외출장의 추억 : 홍콩 (2)

여행경비를 신청합니다


투명 화장실 논란을 지나고,

아직 꽤 많이 남은 것 같은 출장일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컨벤션을 보러 가는 것이지만, 업무에 유용한 인사이트를 많이 얻을 수 있도록 업계와 유관한 곳들도 부지런히 찾아서 리스트업을 해두고, 컨벤션의 그 날 그 날 주요 일정과 대조하면서 대강의 일정과 동선도 짜두었다.


여행을 갈 때면 그곳에 대한 정보와 꼭 하고 싶은 것, 꼭 가고 싶은 곳, 꼭 먹고 싶은 음식을 비롯하여 그날그날의 동선과 교통편까지 모두 정리해두는 선택적 치밀함을 발휘하는 사람이었던 나는 그간의 경험을 발판 삼아 완벽한 출장 계획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은 조금 실수였단 걸 곧 알게 되었다.




출장 품의를 쓰면서, 대략 얼마의 경비가 들지 산정해야 했다. 일단 항공편 예약에 이 정도, 호텔 예약에는 이만큼, 식비에는 이마-아아 아안 큼.


많이 걷고, 둘러볼 테니 삼시 세 끼뿐 아니라 간식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어야 한다는 책임감에 불탔다. 그래서 식비를 얼마로 정해야 할지 잠깐 고뇌를 했지만, 욕심만 많았지 막상 멍석이 깔리면 배부르다고 말하는 나의 얄미운 식탐을 알고 있었기에 딱 적정선으로 스스로와 타협했다.


출장에 가서 갑자기 예기치 못한 상황이 생긴다거나,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었기 때문에 예비비를 따로 넣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태까지 경험해 본 국내 출장은 품의를 쓰고, 법인카드를 받아 가볍게 출발하면 되었지만, 해외 출장은 환전이라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전도금을 받아 주머니가 무겁게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리 전도금을 수령해야 했기에 전도금 수령을 위한 문서를 올렸고, 파워 반려를 당했다.

적요 항목에 대한 재점검 바랍니다.라고 짤막하게 쓰여있는 결재 의견을 보고 황급히 스크롤을 내렸다. 아직은 회사에서 삐약이이기도 하고, 평소에도 워낙 심약해서 결재 반려라는 단어를 보면 순식간에 등껍질로 몸을 숨기는 놀란 거북이처럼 움츠러드는 타입이었다.



홍콩 여행경비 전도금 신청!


나는 너무 신나게 계획을 세우고, 여행만큼 설렜던 나머지 경비도 출장경비가 아닌 여행경비로 적어서 결재를 올리는 실수를 했다. 그때는 놀란 거북이가 아니라 적극적인 거북이가 되어 내 의지로 몸을 잠시 숨기고 싶었다.


출장경비 신청으로 0.3초 만에 수정하여 심호흡 후에 다시 결재를 올리고, 그 이후에도 계좌번호가 잘못되고, 또 잘못되어 몇 차례의 결재를 다시 받아야 했다.


그때마다 다시 또 거북이가 되긴 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출장을 갈 수 있는 준비를 마쳤다. 첫 출장 준비에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까닭에 그다음 출장부터는 빠르고 정확하게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여행 같은 마음으로 출장을 가려고 했으니까,

덕업 일치라며 애써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출장은 곧 한발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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