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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꺽정 Mar 14. 2021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스무 살의 자서전




요즘에 좀 지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퇴근할 때는 가라앉았던 마음이 조금은 흥겨워지지만, 회사에서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이러한 상황이나 문제들을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을 거라는 막막함을 느끼는 터널 같은 시기가 오랜만에 찾아왔다.


가족들과도 사소한 것마저 하나하나 부딪치며 삐걱거리고 있는 때,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기에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자, 상처 주는 미운 말하지 말자고 몇 번이고 되뇌지만, 그럼에도 나를 완전하게 이해해줄 수 있는 게 가족밖에는 없다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툭. 무참한 말들도 내뱉고는 했다.


크고 작은 일들, 슬프고 힘든 날들이 이어지고 있어서인지 위기인가, 인생에 전에 없던 위기가 찾아왔나 싶어 마음이 덜컹 내려앉아 약간 풀 죽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밤중에 확인할 자료가 있어서 오랜만에 외장하드를 뒤지는데, 우연히 대학교 1학년 때 쓴 20년 인생에 대한 스무 살의 자서전을 발견했다. 여러 인물들의 일대기에 대해서 배우는 교양 수업을 들었었는데, 그때의 포트 과제가 나라는 인물에 대한 자서전을 쓰는 것이었다.


스무 살까지 겪었던 고민들이, 힘듦이, 생각과 다짐이 묻어있는 그 글을 보면서 과거의 내가 꽤 대견했다.

실패도 했었구나, 그때는 그때의 고민이 있었구나, 걱정도 많았구나.

 

그렇지만 무엇보다 잘 지나왔구나.

누구보다 잘 이겨내려고 했었구나.


현재의 나는 낙심하고 웅크린 채 있는데, 지금보다 훨씬 어렸던 내가 어느새 훌쩍 커버린 나에게 위로를 건넸다. 줄줄 적혀있는 자서전의 말미에는 괜히 눈물이 찔끔 나는 대목도 있었다. 그대로 옮겨보기,




언젠가, 소설에 대해서 배우면서 그래프를 그린 적이 있다. 소설의 주인공의 삶을 따라가면서 주인공의 삶이 잘 풀릴 때는 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주인공의 삶이 어려울 때는 하향 그래프를 그렸다. 그래프를 곡선으로 잇자, 규칙적이진 않지만 그럴듯한 물결모양의 그래프가 완성되었다.


주인공의 삶이 불행하고, 더 불행할 수는 있어도 그래프는 반드시 다시 위로 올라갔다. 주인공의 삶이 행복하고, 더 행복할 수 있어도 그래프는 반드시 다시 아래로 내려가기 마련이었다.


소설을 배우면서 그 소설에 대한 그래프를 배우는 일은 별 것 아닌 일이었지만 내 인생도 소설의 주인공처럼 필연적으로 물결치게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의 내 인생도 그렇다. 계속 쉴 새 없이 물결치고 있다. 그렇지만 또 그 속에서 더없이 단단해지는 중이다.


나의 홀로서기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또한 내가 주인공인 나의 소설은 'The End'로 맺어져 있는 게 아니라 'To be continued'로 여전히 쓰여지고 있다. 앞으로 이제까지의 것보다 더 힘든 위기가 찾아오고, 더 혹독한 절정을 겪게 된다고 해도 여태까지 해온 것처럼 의연하게 헤쳐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만약 오랜 시간이 지나게 된 후 스무 살의 회고록이 아닌, 마흔 살의 회고록, 예순 살의 회고록을 쓰게 돼도 지금처럼만 날 기특하게 여길 수 있으면 좋겠다.





스무 살의 나는 그때까지 잘 지내온 내가 참 기특했었나 보다.


나는 더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파도의 한가운데고 지금은 조금 낮은 곳에 있다. 더 낮아질 수도 있겠고, 혹은 바닥이라고 생각되는 부근에서 까치발로 겨우겨우 서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반드시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유유히 파도를 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의연하게 헤쳐가며 지내야지. 스무 살의 내가 나와 약속했듯이,


고이 접혀있던 기억 한 조각을 꺼내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내가 나에게 위로받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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