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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꺽정 Apr 07. 2021

늘어가는 혼잣말

멋쩍게 웃는 어른이 되자



"괜찮아~ 야, 너는 뭐 그런 거 가지고 그러냐?"


설거지를 하다 말고 푸념처럼 내뱉은 말에 혼자 깜짝 놀랐다. 회사에서 진행되는 업무 때문에 여러모로 예민해져 있는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 날이었다.


작은 거에 혼자 맘을 쓰고, 애를 쓰고, 힘까지 다 써버린 날, 남은 힘을 겨우겨우 짜내어 설거지를 하면서도 계속 그 작은 것에 대한 짜증이 밀려와서 스스로가 참다 참다 혼내듯이 뱉은 혼잣말. 요즘에 혼잣말이 꽤 많이 늘어서 이렇게 당황하는 때가 종종 있다.




가족들과 꼭 붙어서 살 때는 혼잣말을 할 일이 거의 없었다. 집에 들어가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고 싶은 날이 오히려 더 많았다. 그렇지만 오히려 혼자 있게 되니까 무슨 염불을 외듯이 한 마디씩 혼잣말을 하는 때가 많아졌다.


집에 들어가면서 "오늘 저녁은 뭐 먹지?"라거나,

쌓여있는 빨래를 보고 "여기에서 괴물이 나와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아"라거나,

제안서를 정리하면서 "넌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라거나 기타 등등.


그건 치열한 고민이기도 하고, 스스로에 대한 수긍이기도 하도 의문이기도 하다. 시간이 조금씩 지날수록 혼잣말의 카테고리도 다양해지고, 톤도 다채로워진다. 예전에는 한탄이었다면 요즘에는 격려와 응원까지 건네고는 한다.






문득 혼잣말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나를 토닥여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생 때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 넘어져서 무릎을 크게 다친 적이 있었는데 피를 흘리면서 절뚝이는 다리로 집에 갈 때까지는 울지 않고 있다가, 엄마를 보자마자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엄마가 정성스레 소독해주고, 반창고까지 붙여주자 언제 울었냐는 듯 다시 신이 났던 나.

나를 토닥여줄 사람을 만났을 때야 비로소 꾹꾹 참아왔던 감정이 터지고, 그 후에는 눈물을 닦고, 멋쩍은 웃음까지 실실 흘리게 된다.


회사에서 유쾌하지 않은 일이 있었을 때, 어떤 사람 때문에 맘이 지쳤을 때, 장돌뱅이처럼 돌아다니느라 몸이 지쳤을 때. 내가 집으로 돌아온 그 시점에, 혹은 집에서 혼자 있는 그때에 나에게 괜찮다고, 괜찮다고 지친 등을 토닥여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툭 끊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내가 나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고생했다고, 이제 그만 생각하고 멋쩍게 웃는 단계로 넘어가도 된다고 말해주는 방법이 혼잣말이 된 것 같다.


오늘도 회사에서 첩첩산중으로 쌓이기만 하는 업무를 앞에 두고 나는 "잘될 거야!"라고 외치며 주먹을 불끈 쥐었고, 퇴근길에 언제나처럼 쥐포가 되어도 "괜찮아"라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혼잣말을 잘하는, 멋쩍게 웃는 어른도 꽤 멋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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