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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꺽정 Apr 22. 2021

어김없이 산책을 한다

그냥 마냥 걸어보기


주말에 좋아하는 산책길에 다녀왔다. 이제 곧 훌쩍 날씨가 더워질까 싶어서 더 많이 걸어보려고 노력 중이다. 사람들이 나서기 전, 조금은 이르다 싶은 시간에 차를 몰고 일부러 멀리 까지 가서 한 바퀴 휘적휘적 걷고 돌아오기,


아직 나뭇잎은 한창 짙어지기 전 연둣빛이고, 물은 파랑이라기보다는 빛을 머금은 소라색에 가까웠다. 걷기 좋은 계절이면 자주 찾는 곳이기에 너무나 익숙하지만, 그 풍경은 늘 다르고 새롭게 보인다.


마스크를 벗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며 걸으면 더 좋을 텐데, 바깥에 있어도 어딘가 갇힌 느낌인 것만 아쉬웠다. 그래도 열심히 뚜벅뚜벅, 다정히 운동을 나오신 노부부 곁도 지나고, 촐랑촐랑 걷고 있는 댕댕이 옆도 지나며 나만의 산책을 즐겼다.






걷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어요.

환기가 필요할 땐 무작정 걷곤 하죠.


어딘가에서 많이 읽은 글귀다. 조금은 뻔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혼자 걸으면서 마음을 토닥토닥 다독이는 듯한 느낌도 들고, 생각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집에 혼자 있으면서 우울하거나, 누군가와 다퉜거나, 무언가가 답답할 때면 어김없이 산책을 한다.  


집에 있다간 침대 속으로 영영 침잠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면 퍼뜩 위기감을 느끼고 운동화든 슬리퍼든 급하게 신고 바깥으로 나간다. 물론 맛있는 간식을 만나게 될 수도 있으니 잔돈 몇천 원 챙기는 것도 잊지 않고, 동생에게 마음이 상한 날이면 더 퉁명스럽게 현관문을 닫고 나가는 것도 잊지 않는다.


목적지는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다르다. 조금만 심란한 날에는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오면 기분이 한결 나아지고, 조금 많이 심란한 날에는 전부터 꼭 한번 가보고 싶었거나, 걸어서 가기엔 조금 멀다 싶은 곳까지 용기를 내어 다녀오곤 한다.


걸어가다가 힘들면 에너지가 급격히 떨어져서 감정의 폭풍이 잠잠해지기도 하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맞닥뜨린 작은 성취가 뿌듯해서 마음에 들고 있던 문제는 어떻게든 되겠지, 라며 되지도 않는 긍정 회로가 팽팽 다시 돌기 시작한다.


동생은 우울한 날에 서울을 한 바퀴 크게 도는 버스를 타고 경제적이고 낭만적인 드라이브를 즐기곤 하는데, 나는 동생보다 몸을 좀 더 피곤하게 만드는 타입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어쨌든 나의 하루하루도 혼자 뚜벅뚜벅 걸어야 하는 길이니까, 평소에 많이 연습을 해두는 건 좋은 것 같다.


잠시 한 눈을 팔고 예쁜 풍경을 즐기는 방법,

한적한 벤치에 앉아서 느긋한 여유를 즐기는 배포,

그럼에도 어딘가에 다다를 때까지 포기 않고 걸어가는 끈기,

이런 것들을 배우면서 그냥 마냥 걸어보기


나는 기분이 꿀꿀할 때면 어김없이 산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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