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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꺽정 Apr 23. 2021

꿀고구마 같은 사람

퍼석함과 촉촉함의 적당한 밸런스



유달리 온 사방에서 나를 향해 아우성인 신기한 날이 있다. 평소에는 폭풍전야처럼 잠잠하다가, 어느 날에는 모두가 온갖 이슈로 나를 찾아서 정신이 쏙 빠진다. 그리고, 그런 날이면 내가 해야 할 일보다 다른 이들의 고충을 들어주느라, 혹은 문제를 해결해주느라 동분서주한다.


왜 그런 것까지 네가 하고 있어, 라는 듯한 친구의 표정을 애써 외면하면서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는 때가 있다.


내가 부탁하기 쉬운 사람인 것만은 확실해.


부탁받는 게 기분이 상할 건 없고, 모든 도움이 언젠가는 내게 돌아온다는 생각으로 돕는 것이기에 아쉬울 것도 없지만 때로는 단호하지 못한 내 태도에 스스로가 답답할 때도 없지는 않다.




그런 날이면 꼬리처럼 따라붙는 생각이라곤,

내가 너무 만만한가?라는 스스로에 대한 성찰


잘 도와줄 것 같고, 알려줄 것 같은 내 모습이 싫은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해줬다는 뿌듯함과 고맙다는 진심 어린 한마디를 들었을 때의 보람은 팍팍한 사회생활을 견디게 하는 값진 당근들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때로는 경우 없이 선을 넘고 맡겨놓은 듯이 나의 보따리를 파헤치려는 사람들도 없는 것은 아니라서 오히려 도움을 주고도 어딘가 찝찝해지는 날도 있다. 그럴 때마다 조금은 어딘가 어려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마냥 다디단 초콜릿 쿠키보다는, 살짝 쌉쌀함이 느껴지는 초콜릿 쿠키랄까? 단 것도 마냥 먹으면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때가 있으니까 나만의 선을 지키고 싶다.





그래서 나는 퍽퍽해서 목 막히는 밤고구마 같은 사람도 아니고, 지나치게 물렁해서 몇 개를 먹어도 여전히 배고픈 호박고구마 같은 사람도 아니고, 퍼석함과 촉촉함을 조화롭게 갖춘 꿀고구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달큼하고 촉촉해서 한 입 베어 물기에 부담이 없고, 속도 알차고 토실해서 만족스러운 딱 중간의 고구마!


다른 사람들의 고충을 귀 기울여 들어주되, 때로는 툭 잘리는 고구마처럼 적당히 끊어낼 줄도 아는 사람. 다정한 도움 속에는 그 사람을 위한 따뜻하고 단단한 진심이 담겨있는 사람.


이상, 신나게 여기저기 보따리를 털린 날

저녁으로 고구마를 먹으며 했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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