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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꺽정 Apr 06. 2021

의미부여 끝판왕

어, 이거 혹시?



대학생 시절, 어떤 수업을 듣고 굉장한 감명을 받은 기억이 있다. 교수님이 단어 하나의 의미에 대해서 장장 1시간이 넘도록 강의를 해주셨는데, 나중에는 거의 눈물까지 보이셨다. 너무 몰입해서 미안하다며 멋쩍게 눈가를 훔치시는 교수님을 보며 이런 게 학문인가! 이런 게 깊이인가!


학문과 연구와 한 발 멀어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열성적으로 강의를 하시던 교수님에 버금가게 작은 의미에 집착하는 사람이다.



일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에, 혹은 누군가 나에게 건네는 어떤 말 한마디에, 혹은 우연히 놓이게 된 특정한 상황에 각종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거의 내 본능적인 행동에 가깝다.


그리고, 그런 의미부여가 때로는 착각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오해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한창 엄지족으로 친구들과 바쁘게 문자를 주고받던 시절, 비언어적 표현은 도통 보이지 않는 그 텍스트의 물결 속에서 나는 친구의 문자 하나하나에 지나치게 의미부여를 하며, 친구는 아무 생각 없이 보낸 문자를 가볍게 읽는 게 아니라, 한껏 무겁게 해석하는 수준으로 탐구하고는 했다.


가령 친구가 이어진 내 물음에 "ㅇㅇ"라고 답장을 하면, 그 동그라미 두 개의 의미에 대해서 어, 혹시 화났나? 서운함의 표현인가? 열심히 맘을 쓰고는 했다.


의미부여를 하는 습성이 꽤 피곤하게 작용하는 때가 많기도 했다.



그렇지만, 때로는 이런 의미부여 덕분에 일상이 행복해질 때도 많다. 자주 가는 카페에서 어느 날 서비스로 쿠키를 하나 받으면, 드디어 단골로 인정받았다는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좀 크게 감동을 받는다. 


또, 우연으로 일어나는 일들도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 감동적인 일로 다가서는 때가 많다.


할미개를 데리고 외딴길로 산책을 나선 어느 날, 길 한복판에서 잠시 작은 폭포를 만들어냈는데, 그 모양이 또 하필이면 꽤 특별해서 코끝이 찡해진 경험이 있다.


어, 이거 혹시?

우리 할미개가 나한테 보내는 메시지인 거야?



그 모양이 꼭 하트 모양 같아서,

언니를 사랑한다는 귀여운 사랑 표현인 것 같아서, 너무나도 주책맞지만 기념사진으로까지 남겨둘 정도로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냥 휙 지나칠 수도 있을 풍경이 집에 돌아와서 온 가족들을 모아놓고 자랑할 정도의 예쁜 기억이 되는 건, 의미부여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나에게만 허락된 특별한 행복이다.


툭툭 일상 곳곳에 놓인 의미들을 조심스레 주워서 정성스레 닦고, 이름을 붙여주고, 의미를 더해주고, 소중하게 추억으로 놓아두는 것.


오늘 하루도 우당탕탕 힘들고 정신없었지만 한 조각 행복으로 힘을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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