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아무리 피곤해도 지하철에서 졸지 않았는데, 한해 두 해를 거듭할수록 지하철에서 자는 스킬도 발전해가고 있다. 잠시 생각하는 사람처럼 눈을 감고, 만약 어떤 자극에 번뜩 깨더라도 생각에서 막 깨어난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눈을 뜨는 것, 여기서는 무심하게 머리를 한번 쓸어 넘겨주는 게 필수다. 마친 긴긴 고뇌를 털어낸 사람처럼,
회사 앞 카페에 들러서 HP를 채워주는 포션을 먹는 게임 캐릭터처럼 딱 회사에서 일할 수 있을 정도의 집중력을 충전해본다.
회사에 도착해 책상에 앉아서는 염불처럼 외기 시작한다. "집에 가고 싶다"
당연히, 집에 못 가는 신세는 한번 더 비척비척 일어나서 회의실로 향한다.
그리고, 웃음버섯을 먹은 사람처럼 기묘한 에너지로 가득 차서 회의 때만큼은 활력이 빵빵한 사람이 되곤 한다. 오후 몫의 에너지 거침없이 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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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이 내 몸 같지 않고, 자도 자도 피곤한 지 꽤 오래되어서 도저히 못 견디겠다 싶을 때는 주섬주섬 가방에서 약통을 꺼낸다. 이럴 때 내가 기댈 수 있는 것이라고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6개의 칸들을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영양제들이다. 이걸 규칙적으로 챙겨 먹으면 건강해질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있는 나는 회사에서 조금은 진지하게 약장수라고 불린다.
분명 처음 입사할 때는 건강을 챙겨보겠다는 의욕에 차서 뭘 먹을지 고민을 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살겠다는 의지로 많은 것들 중 무엇을 덜어내야 할지 훨씬 더 치열하게 고민한다.
창문 밖으로 스며드는 햇살을 보면서 알약 한 알을 집어 든다. 직장인이 평일 낮에 햇빛을 쬐기란 쉽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