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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꺽정 May 26. 2021

음식 사진을 찍는 이유

비상식량은 꼭 필요하니까



동생과 오랜만에 외식을 하는 어느 날,

어김없이 음식이 나오자 나는 "잠깐!"을 외쳤고, 동생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젓가락을 들고는 금방이라도 헤집을 것 같은 형형한 기세로 잠시 기다려주었다.


우리 집 할미개처럼 "됐어!"라는 말 한마디에 신나게 냉면을 비비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핀잔처럼 한 마디를 덧붙였다.


"언니는 맨날 그렇게 음식 사진 찍어서 뭐해?

SNS도 안 하면서 어디 올릴 것도 아니고"


음식 사진을 결코 찍는 법이란 없는 동생에게 내 행동은 의아함 그 자체였고, 항상 비슷한 맥락으로 툴툴거리곤 한다. 물론 나는 절대적 권력을 휘두르는 언니이기 때문에 동생의 그런 볼멘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사진을 찍는다. 아래처럼 뻔뻔하게 말하면서,


"남 보여주려고 찍는 거 아니고, 나 보려고 찍는 건데?"




내가 음식 사진을 찍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바로 추억 되새김질. 이상하게 어디에 놀러 갔던 건 잘 기억을 못 해도 어디서 뭘 먹었는지는 귀신같이 기억하는 나라서, 어느 날 먹은 음식 사진을 보면 자연스럽게 함께 만났던 사람과 나눴던 대화까지 기억나고는 한다.


저 비빔냉면을 먹은 날도, 사이드 메뉴로 시킨 갈비만두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동생이 시험이 끝나면, 그리고 이 어두운 시기가 지나가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동생은 가엽게도 그냥 카페에 가서 공부 생각도, 미래 생각도 안 하고 멍 때리고 싶다고 했었다.





투박하게 찍은 음식 사진에 추억을 함께 담아두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사진을 보면서 배를 불릴 수는 없지만, 그날 그때 함께했던 사람들, 나누었던 이야기를 생각하면 조금 외롭거나 쓸쓸했던 날 주린 마음은 채우기에 충분하다.


그때 먹었던 여기 진짜 맛있었는데, 또 가봐야지

ㅡ 이거 그때 땡땡이랑 같이 먹었었는데, 잘 지내나?


이런 생각의 연쇄로 마음이 헛헛해서 식욕마저 잃은 나답지 않은 날에 뭘 좀 먹고 힘내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해 주고, 사느라 바빠서 조금은 소원해졌던 친구에게 쑥스러운 안부를 전하게끔 해준다.




어떤 날의 나를 위해서 비상식량을 비축하는 것처럼,

오늘도 모두의 따가운 눈총을 견뎌내며 꿋꿋하고 신속하게 사진을 찍어본다.


외롭고 힘든 날,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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