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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꺽정 May 28. 2021

테이프를 뜯으며 느낀 행복

작은 배려가 채우는 하루




직장인의 낙 중 하나는 퇴근 후, 나를 기다리고 있던 택배를 뜯는 일이다. 현관 앞에 얌전히 놓여있는 택배를 신나게 집어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가 현관에서 후다닥 뜯기 바쁘다.


그리고, 스티로폼 박스에 포장되어서 도착한 소곱창이 그날의 하이라이트였다. 여느 날처럼 커터칼로 가장자리에 빙 둘러진 테이프를 자르려고 했는데, 애타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서 조금 살펴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나를 부르는 목소리를 찾을 수 있었다.



ㅡ 여깁니다!! 여기에요!!


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테이프 뜯는 곳이라고 적힌 명함사이즈의 종이 한 장. 여태까지 무수히 많은 택배를 시켜봤지만 저런 종이가 달린 택배는 처음이라 너무 신기해서 사진까지 찍어두었다. 저 종이를 뜯었더니 칼이 없이도 수월하게 테이프를 뜯을 수 있었다. 원래는 스티로폼과 커터칼의 마찰로 기묘한 소리를 듣고, 때로는 너무 강하게 잘라대는 바람에 흰색 스티로폼 입자가 나풀거리는 일도 많았는데, 그런 고통스러움 하나 없이 말끔하게 테이프 제거에 성공했다.


많은 택배를 포장하려면 비록 종이 한 장을 끼우는 일이라도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닐 텐데, 이렇게 누군가의 불편을 생각하는 작은 배려를 일상 속에서 만나면 그날 몇 시간은 내내 그것으로 행복하다. 마치 겨울날 추운 거리에서 작은 성냥개비 하나에 의지한 성냥팔이 소녀 같지만, 그 따뜻함이 주는 온기가 활활 타는 횃불이나 모닥불 못지않다.




세상에 당연한 배려는 아무것도 없다.

시간도 써야 하고, 그만큼 맘도 써야 한다.


뒷사람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 잠시 동안 문을 잡아주는 누군가는 그것을 위해 몇 초의 시간을 써야 하고, 약간의 근력도 써야 함은 물론이다. 길 한복판에서 와르르 짐을 떨어트린 누군가를 위해 지나가던 행인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작은 펜 하나, 책 한 권을 주워주는 것도, 앞에 있는 사람에게 가방 문이 열렸다고 작게 귀띔해주는 것도 관심과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들이다. 그렇기에 일상에서 툭, 툭, 마주치는 이런 배려들이 조금 더 많아져도 좋겠다.


당연하지 않은 배려를 받는 우리들의 하루가 오늘도 행복으로 꽉꽉 채워졌으면 좋겠다.


아무튼, 오늘 저녁은 소중한 배려를 전해준 소곱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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