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볼륨이 작아진 우리 강아지에게
댕댕아, 우리 마음 보이지?
우리 할미개는 14살이다.
웬만한 강아지 모임에서는 나이로 밀리는 법이 거의 없고,
동물 병원에서도, 애견 동반 식당에서도 뭇 하룻강아지들의 공경을 받을 만큼 큰 어른이 되었다.
할머니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을 만큼 여전히 우리 눈에는 엄살쟁이 아기강아지지만, 그래도 자연의 섭리라는 것이 비켜나갈 수는 없기에 노화의 흔적이 하나 둘 쌓여간다.
그런 흔적들이 곳곳에 놓여있는 돌부리처럼 마음을 덜컥, 덜컥 걸리게 하곤 한다. 물론 처음에는 조금 상심하지만, 대개는 곧 할미개를 껴안고 떠나는 그날까지 행복하게 해 주겠노라고 다짐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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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할미개가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원래도 무던한 성격이어서 소리에 그리 예민한 편은 아니었지만, 현관을 들어서도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경우가 많고, 나쁜 짓을 하고 있을 때 천둥처럼 이름을 부르면 흠칫 놀라서 멈추곤 했었는데, 이제는 끄떡없다.
일부러 저~멀리서 불러보기도 하고, 하이톤으로 "간식 줄까?"를 시전 해보지만, 때로는 반응을 하고, 또 때로는 반응이 없어서 처음에는 언제나처럼 무시하는 건 줄 알았는데, 듣는 힘이 많이 쇠하였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인정해가고 있는 요즘이다.
할미개가 자기를 부르는 우리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아서 우리의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우리 목소리가 듣고 싶은데 아무것도 안 들려서 무서워하면 어쩌지,
이런 걱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못내 미안해지고 마는 부족한 나머지 가족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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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동생이 할미개가 밥 먹을 시간에 맞춰서 핑크색 숟가락을 꺼내 들었다.
밥에 영양제를 섞어줄 때 쓰는 할미개 전용 숟가락.
그 숟가락을 뽐내듯이 할미개 앞에 가서 치켜드니 언제 졸렸냐는 듯 용맹하게 짖어대는 할미개
그렇게 알아듣는 게 너무 똘똘하고 귀여워서 웃음이 절로 났다.
동생이 할미개가 냠냠 저녁밥을 먹는 걸 보고 옆에 앉아서 나에게 말했다.
ㅡ 언니. 나 요즘에 제스처로 새로운 말을 가르치고 있어.
핑크색 숟가락 꺼내면 밥이고, 달리는 몸짓은 산책,
앞으로 더 많이 가르쳐줘야지!
그래도 숟가락은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그때, 마음에서 차오르는 잔잔한 기특함이란,
우리가 걱정했던 것과 달리 할미개는 실망하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고, 조금은 불편해진 자신의 몸에 새로운 방법으로 적응해가고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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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개의 세상이 조금은 조용해졌지만 그것으로 또 괜찮다.
난데없는 벨소리나 노크소리에 화들짝 놀라지 않아도 되고, 산책길에 시끄러운 경적소리에 움츠러들지 않아도 되고,
심장이 좋지 않아서 놀라는 게 좋지 않은 할미개에게 오히려 세상의 볼륨의 조금 작아진 게 낫다고 위안을 삼아 본다.
언니들의 목소리가 조금은 희미하게 들려도, 들리지 않아도,
언제든 그 사랑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도록 힘껏 껴안아줄게.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할미개는 옆에서 코까지 골며 도로롱 도로롱 꿀잠을 주무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