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버스를 타면 너무 뱅뱅 돌아가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지하철을 타지만, 웬만큼 더 걸리는 수준이라면 언제나 지하철보다는 버스를 타게 된다. 운전이 서툴고, 생각만 해도 손바닥에 식은땀이 흥건해지는 진성 뚜벅이에게 도심에서 즐기는 드라이브를 가장 편안하고, 안전하고,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란 역시 버스만 한 게 없다.
한가롭고 할 일이 없는 날에는 혼자 왕복 운행을 하는 버스를 타고 휘- 서울을 돌고 오는 사치스러운 시간을 즐기기도 한다.
지하철을 타면 땅속으로 다니니까 풍경이랄 게 딱히 없다.
물론, 한강 인근으로 가면 갑자기 펼쳐지는 바깥 풍경에 잠시 감상에 젖을 때도 있긴 하지만, 줄곧 땅속으로만 다니는 날도 많다.
반면에, 버스에는 풍경이 있다.
계절에 따라 색을 달리하는 가로수 구경도 재미나고, 잘 모르는 곳에 가면 가게 간판을 읽어내리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간혹 재밌는 이름의 가게를 발견하면 검색까지 해서 쓱 한번 훑어보곤 한다. 맛집 후기나, 에세이에서 봤던 집들을 차창 밖으로 운명적으로 마주했을 때의 그 흥미진진함이란!
버스에는 버스 특유의 두근거림이 있다.
약속시간에 조금 늦었을 때 이번 신호에 걸릴지, 아니면 간신히 넘어갈 수 있을지 혼자 초조해하고, 처음 가보는 곳이면 정류장이 어디쯤인지 몰라서 어디에서 일어나야 매끄럽게 내릴 수 있는지 혼자 두근대며 고민한다.
팍팍한 일상생활에서 버스는 내게 가장 다양한 풍경을 보여주는 공간이며, 가장 두근거리게 만드는 밀당의 천재 같은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