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답답하다거나,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을 때면 종종 입버릇처럼 바다에 가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그리고 그런 마음에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버스나 기차에 오른 것도 꽤 여러 번 있다.
바다를 떠올리면 신나고, 뜨거운 여름의 어느 날도 생각나지만, 외롭고 쓸쓸한 어느 날도 함께 떠오른다. 바다가 잘 보이는 벤치 자리에 앉아서, 혹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카페 구석에 앉아서 하릴없이 눈으로는 바다를 보며, 정작 내 마음과 머릿속을 바쁘게 헤엄쳐 다니던 어느 날,
때로는 깊은 곳으로 자맥질을 했다가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올라오기도 했고, 또 때로는 조용히 무언가를 두고 나오기도 했고, 어떤 때는 작은 깨달음을 얻기도 했고, 그냥 가만가만 위로를 받는 날도 있었다.
그 모습이 참 변화무쌍해 보여서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지루하거나, 심심하게 느껴질 새가 없었다. 철썩철썩, 규칙적으로 들이쳤다 물러나는 파도를 보며 조금은 투박하게 어깨를 토닥이는 누군가의 손길 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고, 바위에 부딪쳐서 하얗게 부서지거나 거품이 이는 모습을 보며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나 두려움도 저렇게 없어지지 않을까 기대를 하기도 했고, 저 멀리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수평선을 보면서 지금의 이 마음과 상황은 어쩌면 아주 사소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슬쩍 옆이나 뒤를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모험을 떠날 수 있는 힘을 얻었달까?
나는 겁도 많고, 용기도 없지만 그래도 바다를 보면 어쩐지 저 아래로 푹 꺼져버린 자신감이 새살 돋듯이 슬쩍 고개를 내미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번 깨끗하게 비워냈으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한껏 움츠러든 마음을 펼치고 왔으니 이제 다시 가보자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