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이나 비가 살짝 내린 아침에 풀밭을 걸으면 샥샥 다리를 간질이는 풀의 질감과 함께 상쾌한 초록의 냄새가 훅 올라온다. 그 향기를 가능한 오래 음미하고 싶어서 다리가 젖는 줄도 모르고 걷는 때가 있었다.
가벼운 산책을 위해 슬리퍼를 신고 길을 나서도 풀이 있으면 그 길은 폭신폭신한 카펫이 깔려있는 향그러운 길이 된다. 풀밭을 걷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꽤 비일상적인 일이라, 어딘가로 훌쩍 휴가를 떠난 하루, 혹은 한적한 시골마을에 위치한 할머니 댁을 찾아갔을 때나 즐길 수 있는 소중한 향이기도 하다.
일상을 가득 머금은 우리 강아지의 향도 좋아한다.
향이라기보다는 냄새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지만, 복슬복슬한 털에 코를 폭 파묻으면 콤콤하고 꼬릿한 냄새, 동생의 표현에 따르자면 세상에서 가장 꼬수운 향기가 난다. 목욕을 시키고 며칠이 있으면 스멀스멀 올라오는 냄새, 목욕을 하기 전 날이 절정에 이르는 냄새, 이 역시 참 소중하다.
몇몇 친구들을 그 냄새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 냄새가 뭐가 좋냐며 손사래를 치기도 하지만, 강아지를 키우는 친구들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격한 동의의 끄덕임을 보이곤 한다. 스트레스 잔뜩 받고 집으로 돌아온 날 품에 우리 강아지를 껴안으면 하루 동안 충분히 축적된 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힐링이란 게 이런 걸까, 향기 테라피인 걸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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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물론 다른 향들도 많이 좋아한다.
지하철에서 풍겨오는 델리만쥬 냄새라거나, 길을 지날 때 코끝을 간질이는 타코야끼 냄새, 문을 활짝 열어둔 고깃집에서 나는 삼겹살 굽는 냄새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