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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꺽정 Nov 14. 2022

조금 덜 용서할 용기

용서는 짠, 마법같은 게 아니다


평소에 내가 얼마나 진심으로 용서를 하고 있었을까. 누군가의 사과를 받았을 때, 누군가가 손을 내밀었을 때 때로는 흔쾌한 마음으로 그 손을 잡을 때도 있었지만, 때로는 여러가지 상황과 현실에 치어서 등 떠밀리듯 마주 잡은 것도 여러 번이었다. 물론, 그렇게 내 등을 떠미는 손이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경우에 나 자신이었다. 그게 진정한 용서였다면 대개는 마음이 가벼워졌고, 그래도 그 손을 내치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잔잔한 뿌듯함이 차올랐다.


그렇지만, 그게 그냥 겉으로만 용서하는 것이었다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기는커녕, 오히려 내 마음을 더 괴롭히기 일쑤였다.



용서를 하는 일은 아무리 연습을 해도 늘지 않고, 아무리 경험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저렇게 용서를 구할 거라면 애초에 그냥 잘못을 저지르지 말지, 라는 작은 원망이 때로는 꼬리처럼 따라붙고, 앞에서는 괜찮다고 말했으면서, 뒤에 가서는 왜 더 이야기하지 못했을까, 혹은 그렇게 받아줬으면 안 되는 거였는데 하며 어설프게 용서한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용서한 나를 용서하는 과정이 나에게는 참 길고도 아픈 길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무정하게 들리지만 조금 덜 용서하기 시작했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사과라면 때로는 그냥 돌아서기도 했고, 충분하지 못한 사과라면 내 생각과 감정들을 더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용서가 그냥 짠!하고 마법처럼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이제 나 스스로가 그렇게 너그럽지 못한 사람임을 받아들이고 진정한 용서가 마음에 충분히 차오를 때까지, 누군가의 사과가 마음을 충분히 적실 때까지 이전보다 좀 더 긴 과정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진정한 용서는 결코 마법처럼 한 순간에 원망과 미움을 지워내는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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