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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꺽정 Nov 15. 2022

엄마와 약봉지

엄마의 사랑이란 늘 그런 모양이다



아슬아슬 살얼음판을 종종 거리며 걷길 몇 개월, 아니 몇 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게 코로나와 만나게 되었다. 여태까지 안 걸리고 피해 가고 있어서 정말 안 걸리고 지나가려나 조금은 기대했는데, 언제까지나 비켜가리란 법은 없었나 보다.


안 아프고 잔잔하게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다던데, 정말 언제 이렇게 아파봤나 싶을 정도로 호되게 아팠다. 이렇게 많이 아픈 내가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아팠다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겠지. 나는 이제 다 큰 지 오래인 어른이고, 아픈 몸을 비척비척 끌고 일어나 병원 가서 검사도 받고, 약도 지어 온 데다가, 아플 때일수록 밥을 잘 먹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밥도 한 그릇이나 먹었는데, 병원, 약, 밥보다 더 효험이 있는 한 가지를 말하라면 그건 엄마다.


몸이 조금이라도 아프면 마냥 그냥 엄마가 보고 싶다.


침대에 누워 한참을 끙끙 앓다가 엄마 목소리나 들을 겸 걸어보는 전화, 그리고 코로나에 걸렸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무뚝뚝한 큰 딸. 통화는 길지 않게 끝났지만, 목소리를 들으니까 더 엄마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이 지난한 격리가 끝나면 꼭 엄마를 보러 가야지 내심 굳게 다짐도 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현관에서 소리가 나길래 잠에서 깼는데, 문이 열리지 않고 한참을 덜그럭 거리기만 했다. 토끼처럼 잠이 깨서 현관문 앞으로 다가가 은밀하게 물었다.


ㅡ 누구세요?

ㅡ 엄마야!


우리 집에서 엄마 집까지는 못해도 2시간이 걸리는 거리. 문을 열자 엄마는 자주 다니는 한의원 약봉지를 들고 서있었다. 엄청 반가웠는데, 엄마가 걱정되는 마음에 여길 오면 어쩌냐고 불퉁거리는 맘 따로, 입 따로 노는 스스로도 괴로운 아직은 한참 더 커야 하는 나,


ㅡ 이거 꼭 잘 챙겨먹어.


엄마는 약을 꼭 잘 챙겨 먹으라는 당부와 약봉지만을 남기고 구름을 타고 온 신선처럼 다시 슝- 떠나버렸다. 그리고 나는 혹여라도 엄마에게 바이러스를 옮길세라 멀찍이 서서 알겠다고 대답하며 손을 휘휘 흔들었다. 힘들게 여기까지 오면 어쩌냐고, 2시간을 왔다 2시간을 가려면 총 4시간이나 걸리는 건데 어쩌고 저쩌고, 비말이 튈까 봐 마스크를 쓰고도 건네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카카오톡으로 와다다 보내지만, 엄마는 두 마디로 응수한다.


〔 좋은데. 가을도 볼 수 있고 〕


우리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단풍이 꽤 멋졌는데, 아마 엄마는 그 길을 걸어가며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여태까지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여유와 낭만을 가장한 엄마의 걱정을, 택배로 보내려다가 하루라도 빨리 먹이려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들고 온 엄마의 마음을. 그래서 엄마가 들고 온 약봉지에서 약을 꺼내서 한 포를 원샷하고, 이렇게 말하면 찌질하긴 하지만 조금 울었다.


아픈 내가 엄마가 보고 싶었던 만큼, 엄마도 아픈 내가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엄마의 사랑이란 늘 그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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