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냐란드(Tañarandy)
따냐란드는 파라과이에서 여행 가본 곳 중 가장 특색 있고 의미 있는 곳이었다.
따냐란드는 과라니어(스페인어와 함께 파라과이의 공용어인 원주민의 언어)로 굴하지 않는 자들의 땅(Tierra de los irreductibles)이라는 뜻이다. 스페인 식민지 개척자들의 정복에 반대하는 원주민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사실 관광지라 볼 수는 없다. 아주 작은 마을로 일 년에 딱 한번, 세마나 산타(Semana Santa-부활절 성주간)의 금요일에 열리는 행사에만 사람이 많이 몰린다.
스페인 식민지였던 남미의 모든 나라가 그렇듯 파라과이도 국교가 가톨릭이다. 사순절의 마지막 주인 세마나 산타(Semana Santa-부활절 성주간)는 가장 중요한 주로, 연휴로 지정되어있어 곳곳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그 많은 행사 중 따냐란드에서 열리는 의식이 의미 있는 것은 원주민의 문화와 가톨릭 문화가 융합된 것이기 때문이다.
행사는 마을에 어둠이 깔렸을 때 시작하지만 사람들은 대가족 단위로 그것을 보기 위해 마을에 일찍 도착한다. 마을 입구에서 제단이 있는 곳까지 약 5km 정도 되는 붉은 흙길은 천국으로 가는 길(Yvaga Rapé: Camino al Cielo)이라 불리는데, 어두움이 내리면 횃불이 양쪽으로 줄을 지어 제단 가는 길을 밝힌다. 그 안에서도 2-3km 정도의 길에는 아페푸(apepú)라는 오렌지 종류의 과일 껍질에 양초 수지와 굵은 실을 가득 채운 작은 등불이 바닥에 여러 갈래 줄지어 놓여있다. 칠흑 같은 밤이 오면 그 작은 촛불은 별처럼 반짝거린다.
제단은 매 해 다른 모양으로 제작된다. 내가 본 것은 바로크 양식의 예배당 형태였는데, 다음 해에는 프란체스코 교황의 방문을 기념하며 ‘최후의 만찬’을 곡식 모자이크로 장식하기도 했다. 제단은 지역의 예술가들과 2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만들고 2-3개월이 걸린다. 주로 옥수수와 콩, 코코넛, 호박, 야자나무 잎으로 장식하는데 모두 그 지역의 토착 종자를 사용한다. 이는 곡식을 주신 것에 감사하는 제의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동시에 가톨릭 예배당의 모양을 가짐으로써 과라니 원주민의 민속 신앙과 가톨릭 신앙의 융합된 모습을 시각적으로 뚜렷이 보여준다.
제단 앞 호숫가에는 의식을 보기 위한 사람들이 빼곡히 둘러앉는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횃불모양의 촛불을 드는데, 어둠을 밝히는 그것들은 호수에 반사되어 장관을 이룬다.
성가가 울려 퍼지면 감동은 배가 된다. 성가는 여러 지역, 다양한 연령의 성가대가 그레고리안 성가뿐 아니라 대대로 구전된 과라니어 성가도 부른다. 이렇듯 이곳 사람들은 현대인들이 더 이상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아 사라져 가는 문화를 보존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이 축제는 국가의 지원 없이 자원봉사자들과 지역사회의 풀뿌리 힘으로 매해 훌륭하게 이어져오고 있다. 주최자는 코키 루이스(Koki Ruiz)인데, 화가인 그는 이 행사뿐 만 아니라 아트 워크숍을 통해 지역을 살릴 방안을 모색한다.
마을에는 집집마다 작은 그림의 간판이 대문에 걸려 있다. 간판에는 가족의 이름과 그들이 맡은 일을 수행하는 세입자의 그림이 독특한 스타일로 그려져 있는데 이것이 그 마을을 더 매력 있게 만든다. 원래 이 그림들은 세실 리오 톰슨(1966-2008)이라는 작가가 그 거리와 각 집에 사는 가족의 이야기를 나타내는 포스터로 자신의 예술 활동을 펼친 것이지만, 그 그림으로 인해 주민들은 사회의 일원으로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코키 루이스가 지역 예술가 및 주민들과 함께 퇴색된 그림들을 복원하고 그 빛을 잃지 않도록 작업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따냐란드에 가면, 가난한 나라에서 정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일구고 다진 그들만의 독특하고 소박하며 따뜻한 공동체 문화를 느낄 수 있다. 그곳 주민들은 주체성을 가지고 스스로 진정성 있는 자신을 표현하고 즐기고, 그 축제 속으로 대중을 초대한다. 어느 지역 주민이든, 외국인이든 모두가 환영받는다. (그 마을 거리에는 심지어 외계인을 환영한다는 그림도 있다)
손에 불을 들고 꺼진 이들의 것에 불을 붙여주면서 삶에도 희망에도 불을 붙이는 곳. 따냐란드.
그리운 그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