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보고싶어
파라과이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함께 있는 동안 누구보다 Te quiero(사랑해)를 많이 말해줬던,
헤어져있는 지금도 변하지 않고 Te quiero, te extraño(보고 싶어)를 말해주는,
Eve(에베).
그녀는 학교에서 나의 코워커였다.
코티칭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봉사자로서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그녀의 업무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돕는 것을 ‘일’로 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기쁜 마음으로 같이 했다.
활동물품을 사러 갈 때마다 차로 수도까지 동행했고 물건들을 편히 사고 실어 올 수 있게 도왔다. 수도에 간 김에 한국 음식을 먹도록 배려했고, 처음 먹는 한국 음식을 그리고 한국 문화를 그녀도 즐겼다. 업무상 힘든 일이 생기면 해결점을 찾도록 애썼다. 그녀가 나를 존중해주니 학생들도 나를 따랐다. 교사들 사이에서도 열외 되지 않도록 늘 챙겨주었다.
학교에서는 물론 일상에서도 마음을 다했다.
내가 누에바 이탈리아에 와서 적응하는 초반, 그녀는 학교 오전반 수업이 끝나면 나를 집으로 데려가 점심을 같이 먹었다. 남은 것은 저녁으로 먹으라고 도시락도 싸줬다. 그 기간이 거의 3개월이나 된다. 일이 끝나면 오토바이로 집에 데려다줬으며, 비가 오면 데리러 오기도 했다. 덕분에 처음으로 오토바이 뒤에 타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아, 이건 내가 몸담았던 조직에서는 금기사항이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하라고 했다. 수천 마리의 날벌레 떼가 나타났을 때는 늦은 밤이었는데도 남편과 같이 와서 해결해 주었다. 날개가 부러진 박쥐가 거실 바닥을 기어 다닐 때도 처리해줬고, 방치된 집 정원의 덤불도 말끔히 정리해줬다. 예쁜 꽃도 심어주고....
심지어 주사도 받아주었다. (취하면 전화하는 버릇이 있는데, 타국이라 한국에 전화할 수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새벽에 몇 번이나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스페인어가 부족해서 금방 끊었지만.... 다음날 몹시 걱정하는 그녀를 보고 그 버릇을 고쳤다.
맘 붙일 것 하나 없는 그곳에서 그녀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친언니 같은 존재였다. 엄마를 비롯한 그녀의 모든 가족도 에베처럼(물론 에베 덕분이겠지만) 다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여주었다. 머나먼 타국인데 하나도 외롭지 않았다. 평소에도, 생일이나 국경일 등 특별한 날에도 그녀의 가족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으니.
그녀 덕에 2년 동안 건강하고 행복하게 참 잘 지냈다.
그녀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 Lisandry. ‘리사’라고 줄여 부른다.
리사에게는 지적, 신체적 장애가 있다. 에베는 ‘장애가 있다(con discapacidad)’고 표현하지 않는다.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다(con capacidad diferente)’고 표현한다. 에베에게 리사는 가장 큰 기쁨이고 사랑이고 살아가는 이유니까.
그런데 너무나 안타깝게도 우리 동네에는 특수교육 시설이 없었다. 엄마가 출근한 동안 외할머니나 일하는 아주머니가 리사를 돌본다. 하지만 말도 못하고 누군가 부축해야만 걸을 수 있는 그녀는 앉아 있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만나는 사람도 가족밖에 없고.... 그래서 종종 내가 놀러 가면 무척 반가워했다. 항상 꽉 안아주고 얼굴을 부볐다. 좋아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여 물어버린 적도 있지만.
리사에게, 에베에게 나도 무언가를 주고 싶었다.
그래서 리사를 일주일에 한 번 학교로 불러 미술교육을 해 주기로 했다.
특수교육 연수를 받아본 적이 있고 통합학급을 맡아본 적은 있지만, 그녀에게 도움이 되기에는 나의 특수교육 경험이 너무 미미했다. 하지만 미술교육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가끔이라도 집을 벗어나 학교에 오가며 걷는 운동이라도 하고 손 조작 활동이라도, 감촉 놀이라도 경험한다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쉽게 생각했는데, 쉽지 않았다.
학교에 처음 온 아이가 첫날은 학교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오줌을 싸버렸다. 집에서는 까꿍놀이만 했던 내가 그녀를 책상에 앉히고 무언가를 시키는 것 자체가 적응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녀가 무엇이라도 해야 좋을 거라는 내 생각 자체가 틀렸다.
리사와 에베에게 너무 미안했다.
두 번째 날은 좀 더 리사에게 친근한 것으로 놀이하듯 접근했다. 음악을 틀어놓고 키보드를 똥땅 거리도록 두었고, 탬버린을 치면서 놀았다. 그러고 나서 마라카스를 만들었다. 빈병에 팥을 집어넣는 조작활동을 하도록.
다음에 만났을 때, 크레파스를 줘 보니 리사의 나이는 14살이었지만 아동미술 발달단계상 1단계(2~4세)인 난화기였다. 상하좌우 불규칙한 직선만 그릴 수 있었지만, 점차 물감과 물을 쓰는 것도 다양한 재료를 만지고 사용하는 것도 재미있어했다.
물감 짜기를 좋아하니 물감을 짜서 접어 문지르기만 하면 되는 데칼코마니를 하고
실을 물감에 적셔 접은 종이 사이에 넣고 잡아당기는 활동도 했다.
풀의 미끈미끈한 감촉도 좋아하니 물감에 풀을 섞어 손으로 풀 그림을 그리고
종이를 찢은 후 리사의 의식 흐름에 따라 붙이기도 했다.
봄엔 크레파스와 물감으로 밤하늘의 불꽃도 그리고
떨어진 꽃을 주워서 꽃나무도 만들었다.
여름에는 물감 번지기와 뿌리기로 비 오는 날 풍경도 만들고
물고기 도장을 찍어 바닷속을 만들었다.
가을에는 나뭇잎을 주워서 곤충 날개에 붙이고
지끈과 고무찰흙으로 과일나무를 만들었다.
겨울엔 촛농으로 눈 오는 밤, 솜으로 눈사람도 만들고,
손바닥 찍기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었다.
에베는 그녀의 작품을 볼 때마다 그렇게 행복해할 수가 없었다. 리사의 그림을 액자로 만들어 집 안 가득 채웠다. 기증식 날에는 나 몰래 학교 한편에 깜짝 전시회도 열었다. 그럴듯한 전시장을 꾸며서 말이다.
난 에베의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리사에게는 참 미안한 말이지만, 어쩌면 나는 에베를 위해서 리사와 미술놀이를 했던 것 같다.
그녀의 사랑은 내가 그곳에 머물렀던 첫날부터 끝까지 한이 없었고,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어서.
사랑이 많은 우리의 딸 리사는 에베 말처럼 다른 능력이 있었다.
에베와 나 그리고 리사, 우리 모두를 행복케 하고 우리의 우정을 더 돈독히 하는 특별한 능력.
Te quiero, te extrañ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