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봉사하는 기쁨
파라과이는 의료시설이 많이 열악하다. 내가 살던 누에바 이탈리아에는 보건소만 하나 있을 뿐, 병원은 아예 없었다. 그런데 임지로 배정되자마자 병이 나 버렸다. 구한 집이 심히 오랫동안 방치된 곳이었는데, 그 집을 청소한 후 몸에 이상이 왔다.
옆 동네에 있는 병원을 찾아갔을 때, 키 몸무게를 재는 것에만 두 시간을 기다렸다. 체중계는 전자식도 아닌 양팔저울식, 추를 이용한 것이었다. 여러 절차와 오랜 기다림 끝에 겨우 의사를 만났다. 그런데 초음파를 봐야만 진단할 수 있다고 검사 예약을 하라고 했다. 예약 날짜는 7일 후였다. 7일 후라니.... 큰 병이었으면 죽고도 남았을 것이다.
다행히 예약 날짜 전엔 통증이 사라졌지만, 검사하러 갔다. 그런데 검사실도 병원 침대도 기계도 심하게 낙후되어 있었다. 검사하다 오히려 병을 얻게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교육만 문제가 아니라 의료 쪽도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봉사단원 중에는 보건 분야로 오는 이들도 많다. 이들 중 친분이 있었던 네 명의 간호 단원이 우리 학교로 성교육과 혈액형 검사를 하러 와주겠다고 했다.
여기의 사람들은 거의가 자신의 혈액형을 모른다. 큰 병원에 가지 않는 이상 자기의 신장이나 체중도 모르는데, 혈액형인들 알 턱이 있나. 학교에는 보건실도 보건교사도 없다. 구급함은 있는데, 내가 본 우리 학교 구급함의 대부분의 약은 유통기한이 수년은 지난 것이었다. 학교 내 아이들을 위한 건강 제도는 아무것도 없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외부 단체에서 위생교육이나 성교육을 위해 학교를 방문하는 게 전부였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이런 건강 관련 프로젝트는 학교에서 너무 귀했다.
학교일에 열정적인 교장선생님은 그들의 프로젝트를 진심으로 환영했다. 각 가정에 소식지를 보내서 혈액형 검사를 알리고 원하지 않는 학생들은 제외시켰다. 담임 선생님들의 협조도 잘 이루어져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 학생들이 모두 질서 있게 행동했다. 바늘이 손가락을 따끔하게 찌를 때는 무서워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혈액형 목걸이를 걸은 아이들은 신기해하고 신나 했다. 교장선생님 등 원하는 선생님들도 혈액형 검사를 받았다.
성교육을 받는 아이들도 진지하게 임했다. 어린 학생들의 성문제가 많아서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간호단원들은 일하는 내내 표정이 밝았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원래 주어진 일도 아니고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다. 다들 각자의 임지에서 간호사로 봉사하고 있기 때문에 타 지역에서의 봉사는 추가 근무인 셈이다. 계획을 세워서 사전에 소장님의 결재를 받아야 하고, 필요 물품도 그들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는 사후 보고서도 제출해야 한다. 여간 손이 많이 가는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자발적으로 기쁘게 실행하고 있었다. 또 학생 하나하나를 다 예뻐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백의의 천사가 따로 없었다.
그들이 우리 학교에 온 건 행운이었다.
이후 그들에게 한 번 더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난 현장 사업 중 하나로 학교에 개수대를 설치했다. 교장선생님의 요구도 있었지만, 음악교육을 하면서 수업 후 리코더에 줄줄 흐르는 땟물을 보며 아이들이 손을 얼마나 안 씻는지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과연 한 번이라도 손 씻기 교육을 받아본 적이 있을는지 의심스러운 정도였다. 학교에는 화장실에 있는 한 두 개의 세면대 이외에 손을 씻을 곳도 없었다. 아마 하루에 한 번도 손을 씻지 않는 아이들이 수두룩했을 것이다.
손만 잘 씻어도 웬만한 질병은 다 막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만 했다.
개수대 완공 후, 두 명의 간호 단원이 다시 우리 학교를 방문했다. (전에 왔던 네 명 중 두 명은 임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녀들의 도움을 받아 초등 1학년 학생부터 중3학생까지 모두에게 손 씻기와 이 닦기 교육을 실시했다. 어린아이들은 물론 다 큰 중학생들도 이 위생교육을 재미있어했다. 가르침대로 아이들은 손과 이를 알맞은 방법으로 꼼꼼하게 닦았다. 교육하는 이들의 얼굴도 밝았고, 따라 하는 아이들의 표정도 환했다.
이들과 협업하면서 함께 일하는 것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즐겁게 일했다. 도움을 청하면 흔쾌히 손을 빌려주었고, 마음이 참 따뜻했다.
간호 단원들만이 아니라 학교 관계자와 담임교사들도 기쁜 마음으로 협조했다.
늘 그랬듯, 나의 코워커 에베도 맛있는 집 밥으로 마음을 표현해 주었다.
그리고 그 좋은 결과는 모두 아이들에게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