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투에도 결이 있다

결의 순환에 대하여


혀가 짧아도, 나는 말로 부를 쌓았다.

발음이 또렷하지 않아도, 말투로 사람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말투는 지금, 나의 가장 큰 자산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혀가 짧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또렷하지 못한 발음 때문에,

내 말투가 늘 오리무중 하다는 인상을 준다는 걸 알았다.

그 말은 나를 작게 만들었고,

때로는 말을 아끼게 만들었다.

내 안에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이미 힘이 빠져버렸다.



그리고 17년 전,

나는 일본어를 전혀 모른 채 일본에 왔다.

현지에서 한 단어, 한 문장씩 익히며 살아야 했다.

한국에서도 발음이 또렷하지 않다고 주눅 들었던 내가,

어설픈 일본어로 타국에서 고객을 맞이해야 했다.


그런데도, 나를 지지해 주고 꾸준히 찾아 준 고객들이 있었다.

그분들은 완벽한 언어 대신,

내 말속에 담긴 진심과 담백함을 받아들였다.

그 경험은, 표현의 진실함이야말로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힘이라는 걸 내게 가르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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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이 중요한 자영업을 하면서,

나는 말투가 가진 힘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처음에는 나의 단점을 최소화하고,

프로페셔널함을 어필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정확한 정보, 깔끔한 문장, 매끄러운 어조.

마치 결함을 가려내는 데 집중한 투자자처럼.



업종상, 단가상,

물질적으로 부유한 고객을 더 열심히 영입하려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 같은 업을 같은 장소에서 이어온 경험은

전혀 다른 진실을 알려주었다.


진짜 VIP는 재력이 아니라,

우리 샵을 사랑하고 시간을 쌓아온 사람이라는 것.


나는 이제 고객의 ‘구매 능력’보다

그분이 우리 샵에 남긴 누적 구매 내역과 충성도를 VIP의 기준으로 삼는다.

지갑이 두꺼운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두터운 사람이 오랫동안 가게의 가치를 높여준다.



내 일상 역시 브랜드보다 결을 고른다.

그리고 그 결은 내 일터에도 스며들어,

고객과의 대화와 서비스, 하루의 흐름까지 결을 일으켜주었다.

결국 나는, 사적인 선택과 직업의 선택이 같은 결 위에 서 있다는 걸 안다.



한 직업을 20년 이상, 한 장소에서 12년째 영업하다 보니,

내가 인식하고 있는 고객의 모습은 극히 일부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서로 변해가기도 한다.

예전에는 그저 한 번 관리만 받으셨던 분이,

몇 년 뒤 아주 큰 금액을 등록하신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나중에 친밀해져서 물어보면 돌아오는 답은 늘 비슷했다.


“첫 번째 방문 때, 당신과 샵의 인상이 너무 좋아서

꼭 다시 오리라 마음먹었어요.”



그런 고객들이 해 주신

과거 나와 샵에 대한 기억을 듣다 보면,

“내가 그랬다고?” 하며 스스로를 칭찬하고 격려하게 된다.

그리고 그 기억을 현재의 마케팅에도 자연스럽게 활용한다.

그건 여러 모습이 있지만,

결국 순간에 최선을 다한, 무의식적 나의 솔직함이었다.


굳이 있어 보이려 애쓰지 않고,

전문가적 긴장감을 세팅하지도 않았다.

표면적인 혀 짧음이 가볍게 보일까 걱정하던 마음을 내려놓고,

상대를 먼저 바라보고 먼저 듣고,(사실 일본어를 전혀 모르고 시작하게 된 덕분에 발달된 능력이다.)

그 위에 여유와 미소를 얹어 건넸다.



이 경험은 나에게 확신을 주었다.

진실함을 이길 커뮤니케이션은 없다는 것.

말투를 고치기보다,

그 속에 담긴 의도와 진심을 다듬는 것이 먼저라는 것.


투자에도 흐름이 있듯,

관계에도 언어의 흐름이 있다.

감정의 파도에 흔들리는 말투는

주가의 단기 변동성처럼 불안하다.

나는 이제 말투에도 ‘장기 투자’를 한다.

급등락 없이,

천천히 신뢰를 쌓는 언어의 포트폴리오.



격이 있는 말투란,

어려운 단어를 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황이 출렁일수록

단어를 간결히, 목소리를 차분히,

표현을 단정히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

말속에 흐르는 나의 ‘풍요’가 전해진다.

상대는 안다.

이 사람은 급등락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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