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나는 흘러서 부유한 여자가 되었나

나는 어쩌다 이 간판을 걸게 되었을까?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의 선택에 대해 말하고 싶다.



스무 살, 나는 현모양처를 꿈꿨다. 김장철이면 강판을 들고 다니며 인심 좋게 웃는, 그런 손 큰 아줌마. 부자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살 만한 서민” 정도면 충분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일찍 결혼을 했고, 불안감이 스쳤지만 애써 눌렀다.


그러다 서른 즈음, 선택이 찾아왔다.

이 길이 아닌 것 같았다. 결정을 바꿔야 했다. 경력도 단절된 채 돈이 필요했을 때,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잡았다.

그것이 지금의 내 일, 내 업이다.

동경하던 가치 대신 홀로서기를 결정한 만큼

차선의 선택이 최선의 결과물이 되어 눈에 보일 때까지 아등바등 전력질주!




맹목적으로 50세 은퇴를 목표로 삼았다. 그때까지만 꾹 참으면 다시 동경하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타샤 튜더처럼 살 수 있을 거라고 다독이며.

그러다 내 기준한 윤곽이 들어 날즈음인 48세가 되었을 무렵, 속마음이 재촉한다. “지금 접을래? 어차피 비슷하잖아.”

하지만 나는 나와한 약속을 붙들었다.

“50까지 버텨.”


그리고 드디어 50세가 되었을 때—

이상하게도, 막상 그날을 맞으니 내가 사는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하게 다가왔다.

일도, 나 자신도.

은퇴 대신 나는 걷기 시작했다.

오래, 천천히.

다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에게 묻는다.


내가 믿은 그 동경. 정말이었을까?


현모양처의 꿈은 진짜였을까?

“살 만한 서민”으로 만족하겠다는 건 게으른 욕심은 아니었을까?

타샤 튜더처럼 뿌리내린 정착민을 그리던 사람이 일본행을 선택했다고?


내 결론은 이랬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아직. 모른다.

지금 현재를 그대로 바라보며, 생이 끝날 때까지 내가 원하는 모습을 직접 찾아내고 만들어가자.

이젠 편안 대신 평안을 찾으러 가자.



그날 이후 내 삶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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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로 사는 집이 아닌, 내가 갖고 싶은 집을 사서 나다운 공간으로 만들어가 보기로 했다.

갑자기 내일 이사 가야 하더라도.


은행 잔고와 펀드 중심의 돈은 종목투자와 ETF로 바꿨다.

돈은 내게 더 이상 안심을 쌓는 수단이 아니다.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사고의 흐름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사용할 것이다.


노동수입은 이제, 다시 나를 위한 재투자다.

오래도록 이 일을 하게 도와달라는 심정으로, 외모와 체력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흘러서 부유한 여자다.

결과가 아니라 선택이 나를 여기까지 닿게 했고,

나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빠삐용처럼 날아가려는 나,


드가처럼 머무르려는 나.


그 사이를 오가며, 오늘도 나는 나를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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